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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342
한자 金鴻洛
영어음역 Gim Hongrak
이칭/별칭 우경(羽卿),모계(某溪)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군위군
성별
생년 1868년연표보기
몰년 1933년연표보기
본관 의성
대표경력 선조관

[정의]

조선 말기 안동에서 활동한 문신.

[개설]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우경(羽卿), 호는 모계(某溪). 학봉 김성일(金誠一)의 11세손으로, 아버지는 김진억(金鎭嶷)이고, 어머니는 여산송씨로 송양신(宋養信)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홍락(金鴻洛, 1868~1933)은 외가가 있는 경상북도 군위군에서 태어났다. 서산 김흥락(金興洛)의 문인으로, 1884년(고종 21) 동당시(東堂試)에 급제하였으나 취소되었다. 1889년(고종 26) 「관도기(觀到記)」로 사마시에 합격하여 성균관에 들어가 수업을 받던 중 지어 올린 글이 우수작으로 뽑혀, 왕이 『대학(大學)』 한 부를 하사하였다. 1894년(고종 31) 문과에 급제한 뒤 더욱 덕성을 도야하고 의리를 강론하다가 스승인 김흥락이 세상을 떠나자, 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907년(순종 1) 비서감랑(秘書監郞)으로 임명되어 영친왕(英親王) 가례(嘉禮)에 제서관(製書官)으로 일을 한 뒤에 홍문관시독(弘文館侍讀)으로 승진되었다. 이후 비서관기주(秘書官記注)로 옮겼다가 곧 선조관(宣詔官)이 되어 통정(通政)의 품계에 올랐다. 1910년 경술국치 이후 두문불출하고 독서로 소일하며 여생을 마쳤다. 묘소는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만운산에 있다.

[저술 및 작품]

안동시 남후면 단호리 낙암정(洛巖亭)의 「낙암정중수기」를 지었는데, 지금도 현판이 걸려 있다.

[상훈과 추모]

안동시 와룡면 중가구리에는 김홍락과 관련된 유적 한 곳이 있는데, 이곳에는 ‘우신대(友信臺)’라는 글씨가 바위에 새겨져 있다. 이곳은 단발령에도 굴하지 않고 항거한 안승국(安承國, 1871~1950)이 김홍락, 류동준(柳東濬), 권상익(權相翊), 김영익(金永翼), 김규환(金奎煥) 등 당시의 지사들과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우신계를 조직하여 교유하던 곳으로 1939년 삼월회와 회와(晦窩) 이혁연(李赫淵)이 글씨를 새겼다고 한다. 여기서 ‘우신’이라는 말은 『논어(論語)』의 ‘붕우와 더불어 사귐에 성실하라[交友以信]’는 문구에서 취한 듯하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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