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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334
한자 金弼衡
영어음역 Gim Pilhyeong
이칭/별칭 극부(克夫),국창(菊牕)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출신지 경상북도 예천군 금곡리
성별
생년 1725년연표보기
몰년 1800년연표보기
본관 순천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순천(順天). 자는 극부(克夫), 호는 국창(菊牕). 아버지는 김성원(金聲遠)이고, 어머니는 반남박씨(潘南朴氏)이다. 생부는 김휘원(金輝遠)이고, 생모는 인천채씨(仁川蔡氏)이다.

[활동사항]

김필형(金弼衡, 1725~1800)은 1725년(영조 1) 안동(현 예천군 금곡리)에서 태어났으며, 1753년(영조 29) 29세 되던 해에 지금의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로 옮겨 살았다. 효성이 지극하여 생가와 양가를 모두 드나들면서 낮밤을 가리지 않고 어버이 받들기에 정성을 다하였다. 김필형은 고인이 남긴 교훈에서 마음에 일치되는 것이 있으면 글씨를 써서 벽에 붙여 놓고 반성하는 자료로 삼았고, 수재들이 와서 배움을 청하면 싫어하는 기색 없이 정성껏 가르쳤다.

엄격하고 꼿꼿한 성격은 남의 선행을 보면 칭찬하고 남의 허물을 말하는 것을 수치로 여겼으나, 의리와 시비에 관련된 경우에는 쇠못을 끊는 듯 단호하여 조금도 타협하지 않았다. 인간미도 풍부하여 구걸을 청하는 이가 있으면 보는 대로 베풀어 주고 길가에 굶어 죽은 시체가 있으면 입었던 옷을 벗어 덮어 주었다.

1800년 향년 76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류태좌(柳台佐)는 행장에서 “병산서원과 화천서원에서 열렸던 강회에서는 말씨와 문사가 조촐하고 깨끗하였으며, 강의는 막힘이 없어 신선 세계에 사는 학이 인간 세계로 내려와 홀로 서 있는 듯했다”라고 하였다.

[학문과 사상]

눌은(訥隱) 이광정(李光庭)의 문인으로 병곡(屛谷) 권구(權榘)의 아들인 수곡(樹谷) 권보(權䋠, 1709~1778), 가재(可齋) 권명우(權明佑, 1722~1795) 등과 함께 환와서당(丸窩書堂)에서 학문을 토론하였다. 또한, 임여재(臨汝齋) 류규(柳水+奎, 1730~1808), 수오재(守吾齋) 안민수(安敏修, 1724~1790) 등과 함께 도학과 의리를 강론하였는데, 고을의 선비들이 모두 의귀처(依歸處)로 삼았다.

[저술 및 작품]

문중에서 기탁한 『국창문집(菊牕文集)』이 2003년 한국국학진흥원에서 영인 간행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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