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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285
한자 金富儀
영어음역 Gim Buui
이칭/별칭 신중(愼仲),읍청정(挹淸亭),오천칠군자(烏川七君子)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
성별
생년 1525년(중종 20)연표보기
몰년 1582년(선조 15)연표보기
본관 광산

[정의]

조선 중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광산(光山). 자는 신중(愼仲) 호는 읍청정(挹淸亭). 아버지는 대사헌 김연(金緣), 어머니는 창녕조씨(昌寧曺氏)로 조치당(曺致唐)의 딸이다. 형이 김부필(金富弼)이다.

[활동사항]

김부의안동부 예안현(현 경상북도 안동시 예안면)에서 태어났다. 일찍부터 형 김부필과 함께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이황의 신뢰를 입어 역동서원(易東書院) 초대 원장으로 추대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황이 덕성의 함양을 목적으로 간재(艮齋) 이덕홍(李德弘)에게 제작하도록 했던 혼천의(渾天儀)와 선기옥형(璇璣玉衡)의 수리와 보완 작업을 맡았다.

1555년(명종 10)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이듬해에 모친상을 당했으므로 탈상을 마치고 나서 성균관에 유학하였는데 이 때 성암(省庵) 김효원(金孝元), 파곡(坡谷) 이성중(李誠中)과 교유하였다. 1575년 사섬시낭관(司贍寺郎官)에 제수되었으나 형 김부필이 눈병을 앓고 있어서 부임하지 않았고, 1577년에 다시 집경전참봉(集慶殿參奉)에 제수되었으나 풍비(風痺)로 부임하지 못하였다.

김부의는 수신(修身)과 조행(操行)에 있어 모두 힘을 기울이는 모습을 보였다. 『퇴계문인록(退溪門人錄)』에는 김부의의 수업 태도에 관해서 ‘돈독히 하고 힘써 행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인품은 전반적으로 소박하고 단정한 것으로 평가되었으며, 평소 남을 대할 때에도 공손한 자세를 견지하며 규각(圭角)을 드러내지 않았다.

[저술 및 작품]

문집인 『읍청정유고(挹淸亭遺稿)』가 『오천세고(烏川世稿)』 안에 포함되어 전한다. 『오천세고』김부의 집안의 문집으로 아버지 김연(金緣)의 『운암일고(雲巖逸稿)』, 형 김부필(金富弼)의 『후조당선생문집(後彫堂先生文集)』, 『읍청정유고』, 아들 김해(金垓)『근시재선생문집(近始齋先生文集)』, 김해의 장자 김광계(金光繼)의 『매원유고(梅園遺稿)』, 김광계의 손자 김순의(金純義)의 『과헌일고(果軒逸稿)』로 구성되어 있다.

[묘소]

묘소는 안동 지례(知禮, 현 안동시 임하면)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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