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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207
한자 權德秀
영어음역 Gwon Deoksu
이칭/별칭 윤재(潤哉),포헌(逋軒),포촌(浦村),토실거사(土室居士)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출신지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
성별
생년 1672년연표보기
몰년 1759년연표보기
본관 안동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유생.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윤재(潤哉), 호는 포헌(逋軒). 순릉참봉(順陵參奉)에 제수된 매호(梅湖) 권행가(權行可)의 현손이며 권중정(權中正)의 증손이다. 할아버지는 권명시(權命時), 아버지는 권진원(權震元), 어머니는 예안김씨(禮安金氏)로 통덕랑 김종발(金宗渤)의 딸이다. 권덕수의 집안은 권덕수의 5대조인 송암(松巖) 권호문(權好文) 이래 출사보다 향촌에 은거하며 처사로서의 삶을 영위하였다.

[활동사항]

권덕수는 안동부(安東府) 기천현(基川縣) 우곡리(愚谷里: 현 경상북도 영주시 풍기읍)에서 태어났다. 1687년(숙종 13) 하당(荷塘) 권두인(權斗寅)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그 뒤 숙조(叔祖)인 졸와(拙窩公) 권이시(權以時)에게 학문을 배워 가학을 전수받았다. 1690년 향시에 합격하고 동당시(東堂試)에 응시하려 했으나 족형인 구소(鳩巢) 권성구(權聖矩)가 시관임을 알고 응시를 단념하였다. 그 후 금양(錦陽)에 있던 갈암(葛庵) 이현일(李玄逸)의 문인이 되고, 병곡(屛谷) 권구(權榘)와는 막역한 사이로 종신토록 학문적 지향과 삶의 태도를 함께 하였다.

1709년 청성(靑城, 현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막곡리)으로 집을 옮기고, 구하대(驅下臺) 가에 정자를 지어 ‘포촌(浦村)’을 호로 삼았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향리에 격문을 돌려 의병을 일으켰으나 포로가 된 잔당들에게 무고를 당하였다. 하지만 영조가 죄가 애매한 줄을 알고 관찰사 박문수(朴文秀)에게 타일러 무사하게 하였다. 훗날 이인좌의 난 전말을 「황원일기(黃猿日記)」로 남겼다. 만년에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여기저기 삶의 거처를 옮겨 다녔다. 1759년 5월 자제들에게 『대학(大學)』과 『중용(中庸)』을 가져오게 해 직접 그 두 책의 서문을 암송하고 며칠 뒤에 향년 88세로 세상을 떠났다.

[학문과 사상]

권덕수는 어려서부터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두루 섭렵했을 뿐만 아니라 천문(天文), 지리(地理), 계수(計數, 수학)에까지 조예가 깊었으며, 중년 이후로는 사서(四書)와 주자학(朱子學)에 전념하였으며 만년에는 특히 『대학』과 『중용』을 자신의 평생 공부로 여겼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몽구(蒙求)』와 『포헌집(逋軒集)』이 있다. 『포헌집』은 5권 3책의 목판본의 시문집으로 시 전체의 대체적인 내용은 자연을 노래하면서 심정을 의탁한 산수 자연시와 정다운 벗들 간에 주고받은 증별시(贈別詩)와 차운시(次韻詩), 자신의 심정을 그려낸 술회시가 대부분이다. 또 1734년(영조 10)에 안동권씨대동보인 『갑인보(甲寅譜)』를 편찬하였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학가산(鶴駕山) 남쪽 기슭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57년 수직으로 첨지중추부사에 제수되었으며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이 행장(行狀)을 지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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