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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의이씨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124
한자 全義李氏
영어의미역 Jeonui Yi Clan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집필자 김복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세거지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집성촌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지도보기
입향시기/연도 15세기 초
성씨시조 이도(李棹)
입향시조 이웅(李雄)

[정의]

이도를 시조로 하고 이웅을 입향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개설]

안동의 전의이씨는 판서를 지낸 이웅(李雄)이 조선 초 풍산으로 우거한 뒤 후손들이 하리리를 중심으로 세거하면서 형성된 가문이다.

[연원]

전의이씨의 시조 이도(李棹)는 고려개국공신으로 원래 공주 출신인데 왕건(王建)을 도와 후백제 견훤(甄萱)을 물리치는데 공을 세워 공신록에 오르고 전산후(全山侯, 전산은 전의의 옛 지명)에 책봉되었다. 그 후 전산으로 이거하여 정착하고 후손들이 세거하면서 전의(全義)를 관향으로 삼게 되었다.

[입향경위]

이도의 후예 이웅은 고려왕조가 무너지고 세상이 어지러울 때 전농정(典農正)을 지냈으며 벼슬을 버리고 영남으로 내려와 풍산현 사지(笥池, 현 소산리. 속칭 설못)에 우거하였고 자손이 뒤에 하리리로 옮겨 정착하였다. 1608년 편찬된 안동의 지방지 『영가지(永嘉誌)』에 “이웅은 전의 사람이다. 고려 태사 이도의 후예로 벼슬이 판서에 이르렀다. 아들 이화는 무용이 있어 벼슬이 판중추에 이르렀다.” 라는 기사와 이화의 동생 이강(李橿)의 처 의성김씨(義城金氏)의 정려 사적이 기록되어 있다.

이웅의 아들 이화(李樺, 1421~1489)는 세조 때 병조판서를 지내고 판중추부사로 은퇴하고 청백리에 녹선되었고 시호는 양정(襄靖)이다. 이화는 벼슬에서 물러나자 고향에 돌아와 후진을 양성하며 마을 앞에 큰 연못을 파서 사지(설못)라 이름짓고 농업용수로 쓰게 했는데 지금의 소산못이 그 못이라고 한다. 이화의 7세손 나졸재(懶拙齋) 이산두(李山斗, 1680~1772)는 문과를 거쳐 벼슬길에 올랐다가 일직 은퇴하였으나 자헌대부 지중추부사의 직첩을 내리고 기로소에도 들었으며 1759년에는 임금이 화원을 내려 보내 초상화를 그려 올리게 하였다.

[현황]

예안이씨풍산읍 하리리에 대성을 이루고 살고 있다. 이화의 후예들은 하리리 마을 중간의 작은 골짜기 안쪽 골마에 세거해 오고 있다. 한편 이웅의 후손들은 하리리에 약 20호를 비롯하여 영주시 장수면 화지리, 청송군 파천면, 영해 등지에 수십 호가 살고 있다고 한다.

[관련유적]

풍산읍 하리리에 이화를 모신 사당인 지산사우, 이화가 후진을 양성하던 침류정(枕流亭)이 있고, 이산두의 영정을 봉안한 어필영정각(御筆影幀閣)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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