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022
한자 孤山集
영어음역 Gosanjip
영어의미역 Gosan Garland
이칭/별칭 『고산선생문집(孤山先生文集)』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
관련인물 이유장(李惟樟, 1625~1701)|이재기(李載基)|이홍진(李弘辰)|정시한|이상진(李象辰)|이민정(李敏政)|이상정|정범조
저자 이유장(李惟樟, 1625~1701)
편자 이재기(李載基)
간행자 이홍진(李弘辰)
편찬연도/일시 1706년연표보기
간행연도/일시 1775년연표보기
권수 10권
책수 5책
사용활자 목판본
가로 16.4㎝
세로 20.9㎝
표제 孤山先生文集
소장처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처 주소 서울특별시 성북구 안암동 5가 126-1[안암로 145]

[정의]

1775년에 간행된 안동 출신 이유장의 시문집.

[개설]

이유장(李惟樟, 1625~1701)의 본관은 전의(全義)이다. 5대조 이훈(李薰)이 처음으로 풍산(豊山)에 입향하였다. 할아버지는 주부(主簿)를 지낸 이진(李珍)이고, 아버지는 통덕랑(通德郞) 이정발(李廷發)이다. 어머니는 순천김씨(順天金氏)로, 대구부사 김윤안(金允安)의 딸이다.

[편찬/발간경위]

손자 이재기(李載基) 등이 1706년(숙종 32)에 1차 편집한 것을 1775년(영조 51)에 4세손 이홍진(李弘辰) 등이 간행하였다. 이 소장본은 필사본으로 되어 있다. 1차 편집 때 정시한이 발문을 썼으나 이때에는 아직 완성되지 못하였고, 그 후 이유장의 증손 이상진(李象辰)이 유문을 다시 정리하여 교정에 힘쓰다가 이루지 못하고 죽었다. 그 뒤 4세손 이홍진이 그의 족손인 이민정(李敏政) 등과 함께 1775년에야 완성하여 이상정, 정범조 등의 서문을 받아 간행한 것으로 보인다.

[서지적 상황]

저본은 고려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본이다.

[형태]

본집은 원집 8권, 부록 2권을 합쳐 모두 10권 5책으로 목판본이다. 표제는 고산선생문집(孤山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20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6.4㎝, 세로 20.9㎝이다. 어미는 상잡어미(上雜魚尾)이다.

[구성/내용]

맨 앞에 이상정정범조가 1775년에 쓴 서문이 있고, 그 뒤가 총목록이다. 권1~3은 시이다. 370여 제가 저작 연대순으로 편차되어 있다. 권4~5 앞부분은 편지글로서 56편이 인물별로 편차되어 있다. 스승 백졸암 류직(柳㮨)에게 답한 편지가 맨 앞에 있는데, 『심경』과 『근사록』의 강학을 청한 이유에 대해 설명한 편지이다. 그 뒤에 정시한·이시선·김태기·김여만·이현일 등에게 보내고 답한 편지 2~5편씩과 백진흥·유의하 등 문인들에게 보내고 답한 편지, 종인 이명홍, 손자 이재기 등에게 보낸 편지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대부분 안부 편지이고 일향의 문제나 예제에 대한 문답도 실려 있다.

권5 뒷부분과 권6은 잡저 4편, 서 2편, 기 4편, 발 9편, 제문 23편, 명 2편, 행장 5편이다. 잡저는 선세의 유사를 비롯하여 처사 김백하(金栢下)를 위해 지어준 「김씨봉선록(金氏奉先錄)」, 풍산의 열사 권흥리(權興利)를 포증하고 그 부인 열녀 오소사(吳召史)를 포상하도록 부백에게 건의한 정장(呈狀), 김간(金侃)과 김현(金俔)에게 지어준 자설(字說)이다. 서(序)는 예안이씨 족보에 지어준 서 등이다.

기는 이동표를 위해 지어준 「향양재기(向陽齋記)」, 자신의 초당에 지은 「마애초당기」, 1683년 창진(瘡疹)을 앓을 때 친구들이 보내 준 약을 기록해 간직한 「약기(藥記)」 등이다. 발(跋)은 고려 후기 학자인 척약재 김구용을 위해 유고를 편찬하고 지은 발문, 외가에 보관 중인 명나라 주지번(朱之蕃)의 진적에 대한 서후(書後), 류성룡의 조카 이환(李煥)의 문집 『호우유고(湖憂遺稿)』에 쓴 발문 등이다. 제문은 빙산서원(氷山書院)·호계서원·오봉서원·장대서원 등의 축문과 김방열·권해·이빈 등에 대한 제문이다. 행장은 김팔원, 권강, 류직, 부친 이정발 등에 대한 것이다.

권7~8은 묘지명 20편, 묘갈명 12편이다. 묘지명은 이문발·류원정·김경조 등에 대한 것을 앞쪽에, 외조모 두 분, 고조 이훈, 증조 이순인, 선비 순천김씨, 백씨(伯氏) 이유량, 중씨 이유강, 망실 전주유씨 등 가족 친척에 대한 것을 뒤쪽에 실었다. 묘갈명은 권주, 권익창, 김시좌 등에 대한 것이다. 부록 2권에서 권1은 김여만이 지은 행장, 이에 부기된 정시한이 지은 후지(後識)와 문인 이성전이 지은 후제, 그리고 이성전이 지은 「가장보유」, 「역책기사」, 조덕린이 지은 묘갈명, 정범조가 지은 묘지명이다. 권2는 정시한 등이 지은 제문, 이현일 등이 지은 만시, 이재가 지은 「낙빈서원봉안문」, 조덕린이 지은 「상향축문」, 이인복이 지은 「낙빈서원상량문」이다.

[의의와 평가]

「주태사진적후(朱太史眞蹟後)」는 외가에 보관 중인 명나라 주지번의 문적(文籍)에 대한 발문으로, 당시 중국의 서적이 안동까지 유입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단초이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