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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암집』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016
한자 謙菴集
영어음역 Gyeomamjip
영어의미역 Gyeomam Garland
이칭/별칭 『겸암선생문집(謙菴先生文集)』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
관련인물 류운룡((柳雲龍, 1539~1601)|류영민(柳永民)
저자 류운룡(柳雲龍)
간행자 류영민(柳永民)
간행연도/일시 1743년연표보기
권수 8권
책수 4책
사용활자 목판본
가로 16.7㎝
세로 20.6㎝
표제 謙菴先生文集
소장처 안동대학교도서관
소장처 주소 경상남도 안동시 송천동 388[경동로 1375]

[정의]

1743년에 간행된 경상북도 안동 출신 류운룡의 시문집.

[개설]

겸암(謙菴) 류운룡(柳雲龍, 1539~1601)류성룡의 형이며 이황의 문인이다. 1572년(선조 5) 음보로 전함사별좌가 된 다음 의금부도사, 내자시주부, 인동현감, 한성부판관 등을 지냈다.

[편찬/발간경위]

1743년(영조 19) 6세손 류영민(柳永民)이 편집, 간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저본은 안동대학교 도서관 소장본이다.

[형태]

8권 4책의 목판본으로 표제는 겸암선생문집(謙菴先生文集)이다. 행자(行字)는 10행 18자로 구성되어 있으며, 크기는 가로 16.7㎝, 세로 20.6㎝이다. 어미는 상하내향이엽화문어미(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이다.

[구성/내용]

권두에 이광정(李光庭)정종로(鄭宗魯)의 서문이 있고, 권말에 김응조(金應祖)와 후손 류원지(柳元之)의 발문이 있다. 권1에 시 48수, 권2·3에 소 1편, 서(書) 101편, 권4·5에 잡저 8편, 기 3편, 논 1편, 지발(識跋) 3편, 제문 4편, 권6에 유사(遺事) 1편, 세계록(世系錄) 1편, 연기(年記) 1편, 부록으로 권1에 연보, 권2에 행장·묘지·묘갈명·제문·기 등이 있다.

시의 「경차퇴계선생유청량산운(敬次退溪先生遊淸凉山韻)」 2수는 1564년(명종 19)에 퇴계 선생의 문인들과 함께 류운룡이 선생에게 지어 바친 것이다. 이 시는 본집 맨 뒤에 친필유묵(親筆遺墨)으로 실려 있고 거기에 7세손 류종춘(柳宗春)의 제발(題跋)이 붙어 있다. 이 친필 경차시(敬次詩)는 본래 없어졌던 것인데 뒤에 상산(商山)에 사는 어떤 사인가(士人家)에서 발견되어 모각수록(摹刻收錄)한 것이라 한다.

서(書)의 내용은 평범한 것들이다. 잡저의 「추원잡의(追遠雜儀)」는 「정지삭망참예도(正至朔望參禮圖)」, 「속절천시식도(俗節薦時食圖)」, 「사시제도(四時祭圖)」, 「예제도(禮祭圖)」, 「기제도(忌祭圖)」, 「묘제도(墓祭圖)」, 「후토제도(后土祭圖)」 등의 제례도(祭禮圖)가 그 해설로 되어 있다. 「족중입의(族中立議)」는 류씨 문중의 종회 규약이다.

「사문문답일록(師門問答日錄)」은 1562년 류운룡퇴계 선생과 문답한 내용을 기록해 놓은 것이며, 여기에 부기(附記)된 「문충공사문문답일록(文忠公師門問答日錄)」은 아우 류성룡과의 문답 내용을 적어 놓은 것이다. 「분구두법(分句讀法)」은 류운룡이 구두법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적어 놓은 것이다. 「기사문상장시사(記師門喪葬時事)」는 1570년 12월 퇴계 선생이 병이 위독하여 후사를 자손(子孫)들에게 유계(遺戒)한 것을 적은 것이다.

「기일식(記日食)」은 1596년 윤 8월 초1일 을축 사시(巳時)에 있었던 일식(日食)의 상황을 기록해 놓은 것이다. 「의병소진중조약(義兵所陣中條約)」은 임진왜란 때 의병진 중에서 지켜야 할 군율과 의병의 편성에 대하여 써 놓은 약조이다. 「유금강산록(遊金剛山錄)」은 1557년 9월, 황후징(黃候澄)과 함께 금강산을 구경하고 쓴 기행록이다. 「오산서원기(吳山書院記)」는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배향하고 있는 오산서원의 기문이다. 오산서원은 1588년 현감 조천계(趙天啓)와, 경상도감사 윤근수(尹根壽) 등의 주선으로 세워진 것이라 한다.

[의의와 평가]

안동이 부에서 현으로 강등된 것은 두 차례이다. 첫 번째는 1576년(선조 9) 적자(賊子) 신복(申福)이 친모를 살해한 사건 때문이고, 두 번째는 이도현·이응원 부자가 사도세자의 신원을 회복하는 소를 올렸다는 죄목으로 죽임을 당한 뒤였다. 『겸암집(謙菴集)』에 수록되어 있는 류성룡의 「청안동복호소(請安東復號疏)」는 첫 번째 사건과 관련하여 쓰인 소로, 이때의 상황과 전말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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