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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봉신도비및묘방석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981
한자 鶴峰神道碑-墓傍石
영어공식명칭 Stele of Hakbong and Stonework set before a Tomb
영어음역 Hakbong Sindobi Mit Myobangseok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 산 75-3[가수내길 38-15]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정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9년 12월 30일연표보기 - 학봉신도비및묘방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2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학봉신도비및묘방석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비|신도비
건립시기/연도 조선 후기
관련인물 김성일(金誠一)
높이 신도비 213㎝|묘방석 155㎝
길이 신도비 108㎝|묘방석 175㎝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 산 75-3[가수내길 38-15]지도보기
소유자 김종길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에 있는 조선 후기 비석.

[개설]

학봉신도비및묘방석은 조선 중기 문신이며 학자였던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신도비와 묘소 바로 옆에 위치한 묘방석이다. 신도비란 임금이나 고관 등의 평생업적을 기록하여 그의 무덤 남동쪽에 세워두는 것이며, 묘방석은 묘의 바로 옆에 두어 묘의 주인공을 밝혀두는 것이다.

[위치]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 김성일의 묘에서 약 50m 아래에 자리하고 있다.

[형태]

신도비는 거북받침돌 위로 비신과 이수를 하나의 돌로 조각하여 세워놓았으며, 머릿돌에는 두 마리의 용과 구름무늬를 새겨놓았다. 1634년(인조 12)에 세운 비로서, 정경세(鄭經世)가 비문을 짓고, 이산해(李山海)가 글씨를 썼다. 앞면에 새겨진 비의 전액(篆額)은 김상용의 글씨이다.

신도비명(神道碑銘)은 ‘증이조참판학봉김선생신도비명(贈吏曹參判鶴峰金先生神道碑銘)’이라 되어 있으며, 비신 규격은 높이 213㎝, 너비 108㎝, 두께 37㎝이다. 묘방석은 1619(광해군 11)에 건립되었는데, 비보다 앞서 묘를 지키고 있었던 것으로, ‘유명조선학봉김선생사순지묘(有明朝鮮鶴峰金先生士純之墓)’라 새겨져 있다. 규격은 높이 155㎝, 너비 175㎝, 폭 130㎝, 둘레 500㎝로 되어 있다.

[현황]

1999년 12월 30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1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2011년 현재 김종길이 소유 및 관리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신도비의 건립 시기는 경상도 내 다른 비에 비해 오래되었고, 규모도 거대하다. 묘방석 또한 보기 드문 독특한 모습을 하고 있다. 김성일류성룡과 더불어 퇴계학파를 대표하는 인물로서, 그의 학통은 장흥효(張興孝), 이현일(李玄逸), 이재(李裁), 이상정(李象靖), 류치명(柳致明), 김흥락(金興洛)으로 한말까지 이어지면서 영남학파의 중추적 역할을 하였다는 점에서 신도비와 묘방석이 지니는 역사적 의미는 더욱 크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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