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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932
한자 隱谷書堂
영어음역 Eungok Seodang
영어의미역 Eungok Village School
분야 종교/유교,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337-3[석동길 38]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73년 8월 31일연표보기 - 은곡서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6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은곡서당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서당
양식 단층 기와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537년(중종 32)연표보기
정면칸수 4칸(서당채)|7칸(문간채)
측면칸수 2칸(서당채)|3칸(문간채)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337-3[석동길 38]지도보기
소유자 박춘양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에 있는 조선 중기 서당.

[개설]

은곡서당은 조선 중기 학자 은곡(隱谷) 박진(朴璡, 1477~1566)이 건립한 서당이다. 박진의 본관은 반남(潘南)이고, 자는 자진(子珍)이다. 1549년(명종 4) 동지의금부사에 제수되었으나 평생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학문과 후진 양성에 힘썼다.

[위치]

은곡서당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337-3번지[석동길 38] 안동대학교 뒤편에 위치한다.

[변천]

은곡서당은 박진이 후진 양성을 위해 1537년(중종 32) 건립하였다. 오랫동안 황폐한 상태로 있던 것을 1645년(인조 23) 유림(儒林)이 발의하여 중건하였다. 이후 1822년(순조 22) 증축된 것을 비롯해 여러 차례 중수되었으나, 6·25전쟁 때 소실되어 부분적으로 수리해 오던 중 1974년 안동댐 건설로 인해 내앞[川前]2리에서 현재의 위치인 안동시 송천동으로 이건하였다.

[형태]

은곡서당은 서당채와 살림집인 문간채(또는 아래채)로 구성되어 있다. 서당채는 정면 4칸, 측면 2칸의 ‘ㅡ’자형 평면을 이룬 단층 팔작기와집이며, 정면에 부속채로 지어진 문간채는 정면 7칸, 좌우 측면 3칸의 ‘ㄷ’자형 평면을 이루고 있어 전체의 구성을 보면 튼 ‘ㅁ’자형을 이루었다.

서당의 짜임새는 매우 질박하고 견실하며, 모든 부재의 규격은 굵직하고 단단하다. 특히 대청 전면의 네모기둥은 파격적으로 굵은 것이어서 매우 장중한 느낌을 준다. 양편에 온돌이 있으며 가운데가 4칸 대청을 이루었으나 서쪽 온돌은 전면으로 반 칸 남짓 줄여서 약간의 여유 있는 툇마루를 두었다. 전면 마루 끝에는 오르내리는 디딤돌 부분만 터놓고 ‘ㅡ’자로 궁창 난간을 길게 부설하였다.

문간채는 대문간을 중심으로 안방 격인 긴 2통간의 온돌방과 부엌·헛간·외양간·사랑방과 사랑마루·광 등으로 꾸며져 있는데, 아래채에 이와 같은 큰살림 중심의 성격을 띤 공간을 구성하는 것은 보기 어려운 예다. 이는 서당이라는 관념 때문에 보통은 행랑채의 위치에 해당하는 공간에 내당(內堂)의 기능을 이행시킨 특수한 사정에 연유한다고 생각된다.

[현황]

은곡서당은 1973년 8월 31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3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박춘양이다. 매년 은곡서당에서는 후손들이 박진의 유덕을 기리기 위해 향사를 지낸다.

[의의와 평가]

은곡서당의 규모는 서당으로서는 비교적 큰 편에 속하며, 창건 이후 유림의 발의로 계속 개건·유지되었던 점으로 미루어 일종의 정사(精舍)에 근사한 성격의 것이 아니었을까 추측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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