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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750
한자 孤山亭
영어음역 Gosanjeong
영어의미역 Gosanjeong Pavilion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447[가송길 177-42]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2년 11월 26일연표보기 - 고산정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4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고산정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재지정
성격 누정
양식 홑처마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564년(명종 19)연표보기
정면칸수 3칸
측면칸수 2칸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 447[가송길 177-42]지도보기
소유자 금만동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가송리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개설]

고산정은 정유재란이 일어났을 때 안동 수성장(守城將)으로 활약하여 좌승지에 증직된 성재(惺齋) 금난수(琴蘭秀, 1530~1604)의 정자이다. 금난수이황(李滉)의 제자로서 자연과 더불어 학문을 닦는 데 힘썼으며, 1561년(명종 16) 사마시에 합격하여 봉화현감 등을 지냈다. 35세에 당시 선성현(宣城縣, 당시 예안현의 별칭) 제일의 명승이었던 가송협(佳松峽)에 고산정을 짓고 일동정사(日東精舍)라 부르며 늘 경전을 가까이 한 채 유유자적하였다고 한다.

[위치]

고산정은 안동팔경의 하나인 청량산(淸凉山) 가송협의 절벽 아래 자리 잡고 있는데, 주위에는 외병산(外屛山)과 내병산(內屛山)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그 건너에는 송림과 함께 독산이 솟아 있어 절경을 이루고 있다. 고산정 앞으로 강물이 시원하게 흐르고 맞은편 산기슭에는 물맛 좋은 옹달샘이 지금까지 남아 있다.

[변천]

고산정금난수가 1564년(명종 19) 건립하였다. 창건 당시부터 경상북도 예안 지역의 대표적인 절경으로 알려져 이황도 여러 차례 제자들과 함께 와서 「서고산벽(書孤山壁)」·「유고산(遊孤山)」·「고산견금문원(孤山見琴聞遠)」 등의 시를 짓고 경치를 즐겼다고 한다.

[형태]

고산정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집인데, 3m가량의 축대를 쌓아 대지를 조성한 후 얕은 기단 위에 자연석 덤벙주초를 놓고 기둥을 세웠다. 가운데의 우물마루를 중심으로 좌우에 온돌방을 꾸몄는데, 우측 방은 통간으로 하였으나 좌측 방은 뒤쪽의 1칸만을 온돌방으로 꾸며 결국 마루가 ‘ㄱ’자형으로 깔리게 되었다. 전면과 양 측면에는 계자 난간을 둘렀는데, 출입은 난간의 양측 끝에서만 하게 하였다.

[현황]

고산정은 1992년 11월 26일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274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유형문화재로 재지정되었다. 이황금난수의 시가 현판으로 걸려 있다. 고산정에 보존된 이황의 한시 「서고산벽」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일동이라 그 주인 금씨란 이가/ 지금 있나 강 건너로 물어보았더니/ 쟁기꾼은 손 저으며 내 말 못 들은 듯/ 구름 걸린 산 바라보며 한참을 기다렸네(日洞主人琴氏子 隔水呼問今在否 耕夫揮手語不聞 愴望雲山獨坐久)’. 예전에는 이곳에 학이 많이 서식했다고 하나 지금은 없으며, 고산정 왼쪽에 조선총독부에서 세운 조학번식지(鳥鶴蕃殖地)라는 천연기념물 비가 서 있다.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금만동이다.

[의의와 평가]

고산정은 주위의 빼어난 경관과 잘 어우러져 조선시대 정자의 멋스러움을 잘 보여 주고 있다. 뿐만 아니라 건물의 원형도 비교적 잘 유지되어 있어 조선시대의 건축 연구에 도움이 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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