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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례리 고인돌 떼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544
한자 知禮里-
영어음역 Jiryeri Goindoltte
영어의미역 Dolmens in Jirye-ri
이칭/별칭 지예리 지석묘군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고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시대 선사/청동기
집필자 조규복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인돌
건립시기/연도 청동기시대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박곡리에 있는 청동기시대 고인돌

[위치]

지례리 고인돌 떼는 두 곳에 위치했는데, 지금의 박곡리 지역이다. 지례리 고인돌 떼 1·2는 모두 임하댐 수몰로 인하여 현재 임하호 속에 잠긴 상태이다. 지례리 고인돌 떼1은 임동면 지례리(지금의 박곡리) 지촌종택(芝村宗宅, 문화재자료 제44호)에서 동쪽으로 460m 정도 떨어진 곳에 있었다. 지례리 고인돌 떼2는 지촌종택에서 남동쪽으로 300m 정도 떨어진 곳에 지형을 따라 동-서로 길게 분포하고 있었다.

[발굴조사경위 및 결과]

1988년 임하댐 수몰지구의 조사 당시 발견되어 1988~1989년 계명대학교박물관에서 발굴조사하였다. 발굴 결과 이곳은 전체 50~60기로 추정되는 대규모 고인돌 떼가 분포하였다. 지례리 고인돌 떼1에서 22기의 고인돌이 확인되었고, 지례리 고인돌 떼2에서는 모두 9기가 확인되었다.

[형태]

지례리 고인돌 떼 1·2의 장축 방향은 일정하지 않으나, 동북-서남향이 우세하다. 또한 분포 상태는 대체로 강물이 흐르는 방향을 따라 밀집되어 있다. 뚜껑돌 밑에는 길이 30~60㎝ 정도의 둥근 냇돌이나 자연석을 적당히 둘러놓아 그 자체를 사람을 묻는 매장 시설로 이용하였다. 유구의 바닥에는 아무런 시설을 하지 않고, 맨 바닥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었다.

뚜껑돌은 화강암질로 지례리 주변의 산이나 강가의 바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지례리 고인돌 떼1의 뚜껑돌의 길이는 1~2m가량으로 소형에 속한다. 지례리 고인돌 떼2는 동-서로 길게, 대략 2~5m의 거리를 두고 분포하고 있었다. 유구가 제대로 남아 있는 것은 지례리 고인돌 떼1의 것이다. 길이 150㎝ 이상이 3기, 100~150㎝는 8기, 100㎝ 미만이 11기로 대부분이 150㎝ 이하의 소형이다.

[출토유물]

유물의 부장 상태는 매우 빈약하여 유구 내부에서 유물이 출토된 고인돌은 3기에 불과하다. 강물의 범람과 토사 퇴적 등으로 확실하지는 않지만, 원래 부장품이 적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지례리 고인돌 떼1에서는 민무늬토기류와 석기류들이 수습되었다. 유물의 부장과 유구와의 관계를 보면 간돌검, 칼자루끝장식[검파두식]과 같은 의례용 부장품은 유구 길이 150㎝ 이상에서만 출토되고, 그 이하 유구에는 부장품이 없거나 있어도 아주 빈약했다.

[현황]

지례리 고인돌 떼는 현재는 임하호 속에 잠긴 상태이다.

[의의와 평가]

지례리 고인돌 떼는 안동 지역의 대표적 고인돌 유적이다. 유구의 구조와 형식을 통해 안동 지역 고인돌 문화의 실상을 살피는 데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고 평가된다. 첫째, 고인돌은 모두 뚜껑돌 밑면을 따라 받침돌을 돌린 형식이라는 점이다. 둘째, 고인돌이 매우 밀집해서 분포한 점이다. 지례리 고인돌 떼1 22기의 분포 면적은 300㎥에 불과하며, 뚜껑돌 간의 거리도 가장 멀리 떨어진 것이 4.5m, 가장 가까운 것은 20㎝로 거의 붙어 있는 상태이다. 셋째, 의례용 부장 시설과 간돌검 등 의례용 부장품이 출토된 고인돌들은 피장자의 신분적·경제적 지위를 반영한다. 넷째, 시기는 간돌검과 간돌화살촉 등으로 미루어 보아, 청동기시대 후기에도 이르지 않은 시기에 조영된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지** 知禮里- → 知禮里支石墓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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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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