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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436
한자 革新儒林
영어의미역 Reform Confucian Scholars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강윤정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지역에서 서양의 신문화와 신사상을 받아들인 유림.

[개설]

전통적인 화이관(華夷觀)과 의리론(義理論)에 입각한 위정척사 운동과 의병 운동을 전개하던 안동의 유림들은 1904년부터 서양의 신문화와 신사상을 수용하여 계몽 운동으로 전환하였다. 전국적으로 보면 의병 운동과 계몽 운동이 별도로 추진되었는데 안동의 경우는 의병 운동을 전개하던 척사유림이 혁신유림으로 전환하여 계몽 운동을 펼쳤다. 대표적인 혁신유림으로 동산 류인식(柳寅植), 석주 이상룡(李相龍), 백하 김대락(金大洛) 등이 있다.

[협동학교를 설립한 류인식]

안동에서 가장 먼저 혁신유림으로 전환한 인물은 류인식이다. 1904년부터 ‘혁구종신(革舊從新) 열심교육(熱心敎育)’의 기치를 내걸며 본격적인 계몽 운동을 시작하였다. 류인식은 신학문이 인륜을 어지럽히고 인심을 무너뜨린다는 인식은 잘못된 것이며, 선비들이 반드시 공부해야 하는 학문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약육강식(弱肉强食)·우승열패(優勝劣敗)의 형국에서 신학문이야말로 국가와 백성을 위해 적절한 기능을 할 수 있다고 확신하였다.

1907년 류인식은 이 같은 믿음으로 근대식 중등학교인 협동학교(協東學校)를 열었다. 이후 협동학교는 안동 지방 계몽 운동의 요람이요, 안동 유림의 사상적 대변환의 갈림길이 되었다. 보수성이 강한 안동 지역에 혁신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그 바람을 경상북도 북부 지역으로 확산시켜 나간 출발점이 바로 협동학교였기 때문이다. 1907년 11월에는 대한협회 조직에 발기인의 한 사람으로 참여하였고, 안창호(安昌浩)·양기탁(梁起鐸) 등이 중심이 되어 결성한 신민회에도 참여하였다.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조직한 이상룡]

이상룡은 1905년부터 준비한 가야산 의병이 1908년 실패로 끝나자 총체적인 자기 성찰에 들어갔다. 성찰의 과정에서 이상룡은 “50년 세월 동안 공자·맹자의 글을 보며 의리(義理) 탐구에 매진한 것이 부질없는 일이었으니 생각할수록 부끄럽다”라고 자신의 심경을 드러냈다. 그리고 교육을 통한 민력 양성(民力養成)을 새로운 방향으로 설정하였다.

이전의 학문과 실천에 대한 자기반성을 통해 계몽 운동을 새로운 과제로 설정한 이상룡은 1909년 3월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조직하였다. 이상룡의 혁신과 그에 따른 대한협회 안동지회의 설립은 안동 지역에서 커다란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이에 대해 이상룡은 자신이 알지 못한다고 하여 사(邪)나 이(夷)로 배척하는 것은 고질적인 폐단이라고 비판하였다. 또한 세계 각국 문명의 바탕에는 교육기관이 있다고 보았고, 나라가 망한 원인을 교육의 부재에서 찾았다.

이상룡이 이끌었던 대한협회 안동지회는 구한말의 향촌 사회운동과 의병 항쟁·계몽 운동을 계승하는 한편, 일제강점기 만주에서 전개된 한인 사회 건설과 무장 독립운동의 밑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매우 큰 의의가 있다.

[협동학교를 적극 지원한 김대락]

1909년 초 김대락은 65세의 나이에 근대 교육을 지향하는 혁신적 사고로써 협동학교 운영에 앞장 서 안동 지역의 개화에 큰 영향을 주었다. 처음 협동학교를 강하게 비판하던 김대락협동학교의 신교육이야말로 ‘시조지의(時措之宜) 시중지도(時中之道)’라 인식하고 일대 전환의 길을 선택하였다.

이 깨달음은 곧 실천으로 연결되어 자신의 집을 협동학교 교실로 제공하고, 협동학교 확장에 노력하였다. 김대락의 이러한 변화는 안동은 물론 영남에 새로운 바람을 불러일으켰다. 당시 『황성신문』은 김대락의 사상적 전환을 ‘교남 교육계의 새로운 붉은 깃발’이라고 표현하였다.

[의의 및 평가]

위정척사에 대한 자기 성찰을 통해 계몽 운동을 지향한 안동의 혁신유림은 근대식 중등학교인 협동학교와 계몽 운동 단체인 대한협회 안동지회를 설립하여 애국 계몽 운동을 전개하였다. 1910년 국권 피탈 뒤에는 신민회가 추진했던 만주 독립군 기지 건설에 앞장섰고 이후 경학사·부민단·한족회·서로군정서·대한통의부·정의부·혁신의회·한국독립당으로 이어지는 만주 지역 독립운동의 중심 역할을 담당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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