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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대 천석꾼을 한 광주안씨의 ‘피 천석 묘’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A010302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
시대 고려/고려 후기
집필자 임재해

하회마을에서는 예부터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에 류씨 배판”이라는 말이 전해 온다. 각 성씨마다 전해지는 입촌 전설과 함께 하회마을 세거사를 잘 설명해 주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피 천석 전설」은 허씨 다음으로 하회에 터를 잡은 것으로 알려진 안씨들의 내력을 엿볼 수 있는 이야기이다.

고려시대 가난한 안씨 부부가 들일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쓰러져 있는 행각승을 만났다. 살림살이가 빈곤함에도 안씨 부부가 행각승을 가엾게 여기고 집으로 데리고 와서 알뜰하게 구완을 해주었더니, 건강을 회복한 스님이 보답으로 명당을 하나 잡아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후손에 3정승이 나는 명당과, 당년에 천석을 하는 명당 가운데 하나를 고르라.”고 했다.

살림이 워낙 어려운 터라 당연에 천석 하는 명당을 원했더니, 행각승이 묏자리를 하나 잡아주었다. 안씨 부부는 스님이 정해 준 자리에 부모의 묘를 이장을 했는데, 그 해 여름 장마가 지고 물길이 바뀌더니 묘 아래쪽, 지금의 섬들에 드넓은 갯벌이 생겨 들을 이루었다.

안씨 내외는 그 들에 피를 뿌렸고, 그 해에 천 석을 수확하게 되었다. 그 후 사람들은 안씨 묘를 일컬어 ‘피 천석 묘’라고 부르게 되었단다.

「피 천석 전설」에서 우리는 안씨들의 삶의 거처와 경제적 기반을 가늠할 수 있다. 아무래도 안씨들은 화산자락의 따뜻하고 넓은 양지바른 곳에 있는 허씨들의 거묵실골과 장안사의 탑골을 피해서 북서쪽 기슭에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을 전설 속에서 다시 확인할 수 있다. 안씨들이 섬들 위의 산에 묘를 썼다고 하는 것은 바로 그들의 삶의 영역이 어디쯤이었다고 하는 것을 말해 주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제적 기반도 화산자락의 논들보다는 북쪽 기슭에 갯벌로 이루어진 섬들을 통해서 마련했다는 사실이 안씨들의 형편을 짐작하게 한다. 3정승이 나는 명당보다 당년에 천석 하는 명당을 택했을 뿐 아니라, 그것도 쌀 천 석을 거두지 못하고 피 천석을 거두었다는 사실이 이러한 사정을 더 구체적으로 말해 준다. 후대의 장기적인 전망보다 우선 피 천석이라도 거두어 넉넉하게 먹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형편이 좋지 못했던 것은 아닌가 싶다. 그 까닭은 사람됨의 역량 탓이라기보다 이미 허씨들이 좋은 곳을 골라 터을 잡은 지역에 뒤늦게 들어와 정착하면서 불리한 입지를 택할 수밖에 없었던 탓이라고 볼 수 있다.

안씨들은 진작부터 남쪽의 좋은 땅을 가려서 마을을 이루고 있는 허씨들의 세력에 밀릴 수밖에 없었을 터이다. 그리고 화산 가운데를 점유하고 있는 연화사의 영역을 피해서 터를 잡고 농지를 개척해야 할 처지이다.

그러자니 척박한 곳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경제적 기반을 마련하고 가문을 이루며 마을을 지탱한 것은 뻘에 의해 형성된 섬들 덕이라고 하겠다. 안씨 문중의 사람됨은 어려운 처지에도 걸승을 따뜻하게 돌보며 병구완을 해준 심성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부지런하고 착한 심성이 바탕이 되어 척박한 섬들을 개척하고 가문을 이루었으며 한때 풍요로운 삶을 누렸던 것인데, 곧 ‘허씨 터전에 안씨 문전’을 차렸다는 것은 안씨들의 대단한 성취를 뜻한다고 할 수 있다.

1934년의 갑술년 대홍수 때까지 하회 근방에서 가장 넓은 들을 형성하고 있던 곳이 바로 이 섬들이다. 섬들이라고 하는 까닭은, 「피 천석 전설」에서 보듯이 낙동강, 곧 화천 한가운데에 토양이 쌓여 상당히 넓은 면적의 퇴적지형이 섬 모양으로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갑술년 대홍수로 떠내려가기 전에는 약 19.83㏊(198,348㎡)의 규모를 자랑하는 땅이었다. 지금은 약 1.98㏊만 남아 있다. 구전되는 옛말에 의하면, 하회에는 500년마다 한 차례씩 섬이 생긴다고 하는데, 섬들도 그러한 역사 속에서 생겨났다 사라져 가고 있는 셈이다.

안씨들의 경제적 기반은 바로 이 섬을 통해서 확보된 셈이다. 안씨에 이어 하회에 들어온 풍산류씨들만 하더라도 선주민들의 기득권 때문에 상당한 시련을 겪었다는 사실을 염두에 둔다면, 안씨들의 성취 또한 높이 평가할 만하다.

지금 하회마을에는 김해허씨와 광주안씨들이 살지 않는다. 허씨가 하회마을에 처음 터를 잡아 살고, 당대 천석꾼을 한 안씨들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살았지만 지금은 류씨들이 집성촌을 이루고 살고 있다. 기록으로 남아 있는 안씨들의 흔적과 주민들에게 전해 오는 이야기 속에서 안씨들의 옛 사정을 알 수 있을 뿐이다.

[정보제공]

  • •  김수갑(여, 1934년생, 하회리 거주, 일명 춘양댁)
  • •  류시황(남, 1957년생, 하회리 거주)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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