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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74
한자 柳時淵
영어음역 Ryu Siyeon
이칭/별칭 류시영(柳時榮),류시종(柳時宗),류시연(柳時然),류시영(柳時永),류승일(柳承一),박여(璞汝),응만(應萬),성남(星南)
분야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시대 근대/근대
집필자 한준호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72년연표보기
몰년 1914년연표보기
본관 전주
대표경력 안동의진 선봉장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

[개설]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박여(璞汝)·응만(應萬), 호는 성남(星南)이다. 또 다른 이름으로 류시영(柳時榮)·류시영(柳時永)·류시종(柳時宗)·류시연(柳時然)·류승일(柳承一) 등이 있다. 1872년(고종 9) 지금의 경상북도 안동시 임동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현재 임동면 수곡리에 묘가 있다.

[활동사항]

류시연은 1896년부터 1914년 42세에 순국할 때까지 약 18년 동안 의병 항쟁을 펼쳤다. 그는 어렸을 때 마을에 있는 대평학숙(大坪學塾)에서 류연각(柳淵覺)에게 한문을 배웠다. 그리고 용맹하면서도 병서(兵書) 읽기를 좋아하였으며, 어떤 일에 있어서도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매사 과감하게 결단하였다. 류시연이 의병 항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은 1896년부터였다. 그는 약관인 24세의 나이로 안동의진의 소모장과 선봉장 직책을 맡아 활동하였다. 이후 1905년 을사조약 체결로 전국적으로 의병 항쟁이 일어나자 의진을 창의하였다.

류시연은 1906년 봄부터 1908년 여름까지 안동을 중심으로 한 봉화·예안·청송·영양 등 인근 지역에서 활동하였다. 이 기간 동안 류시연은 예안분파소를 점령하는 성과를 거두었으며, 지속적인 교전을 통해 일본군 수비대에게 타격을 입혔다. 특히 군대 해산 이후 일제의 의병 토벌 작전이 강화되었을 때에는 신돌석(申乭石)·김성운(金成雲) 등과 연합하여 1908년 2월 영양 일월산에서 항쟁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

류시연은 1908년 2월 일월산 항쟁 이후 의진을 해산하고 만주로 망명하였다. 그리고 1912년 군자금 및 무기 구입에 필요한 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국내에 들어왔다가 1913년 8월 영주시 문수면 소재지인 반구시장에서 체포되었다. 같은 해 11월 29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사형을 선고받고 1914년 1월 29일 대구감옥에서 교수형으로 순국하였다.

[상훈과 추모]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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