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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615
한자 金興洛
영어음역 Gim Heungrak
이칭/별칭 계맹(繼孟),서산(西山)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근대/개항기
집필자 강윤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의병장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827년연표보기
몰년 1899년연표보기
본관 의성
대표경력 안동의진 지휘장

[정의]

조선 말기 안동 출신의 의병장.

[개설]

김흥락은 본관이 의성(義城)으로 1827년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금계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계맹(繼孟), 호는 서산(西山)이다.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종손으로 한말 퇴계 학통을 잇는 경상북도 북부 지역 문화권의 핵심 지도자이며, 위정척사론을 견지하고 안동 지역의 전기 의병을 이끌었던 인물이다.

[활동사항]

1895년 12월 30일 내려진 단발령 소식이 안동에 전해지자 김흥락은 의병을 일으키려는 논의를 이끌어 냈다. 논의 과정에서 김흥락은 1차 의병장으로 추대되었으나 지병과 대묘(大廟: 학봉 김성일의 사당)를 모시고 있다는 이유를 들어 사양하고, 봉화 닭실[酉谷] 출신의 참봉 권세연(權世淵)을 의병장으로 추대하였다. 권세연이 이끄는 1차 의진이 결성되자 안동부성에 머물며 여러 문중의 협력을 이끌어 내는 데 주력하였다.

한편, 안동의진은 1896년 1월 하순 안동부성 탈환에 성공하고, 3월 7일 지휘부를 포(砲)를 중심으로 하는 전투적인 편제로 편성하였다. 일주일 뒤 권세연이 의병장에서 스스로 물러나자, 김흥락은 후임으로 척암(拓庵) 김도화(金道和)를 선출하고 하회류도성(柳道性)과 함께 지휘장(指揮將)을 맡아 안동의진의 활동을 뒷받침하였다. 의병이 해산된 뒤 검제 서산재(西山齋)에서 병약한 몸으로 학문에 몰두하다가 1899년 세상을 떠났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서산문집(西山文集)』이 있다.

[상훈과 추모]

1995년 건국훈장 애족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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