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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347
한자 金熙紹
영어음역 Gim Huiso
이칭/별칭 백옹(伯雍),문천(文泉)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인·학자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단사마을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유생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단사마을지도보기
성별
생년 1758년연표보기
몰년 1837년연표보기
본관 의성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유생.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백옹(伯雍), 호는 문천(文泉). 아버지는 이조참의에 증직된 김두동(金斗東)이며, 어머니는 전주류씨로 류세원(柳世源)의 딸이다. 동생이 김희락(金熙洛)이다.

[활동사항]

김희소(金熙紹, 1758~1837)는 지금의 안동시 도산면 단천리 단사마을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아버지를 여의고 동생 김희락과 더불어 밥 먹을 때나 잠잘 때도 함께 생활하였다. 둘째아버지 소암(素巖) 김진동(金鎭東)에게 고하여 사촌 아우인 백산(白山) 김희분 및 동생 김희락과 함께 대산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고, 동암(東巖) 류장원(柳長源)을 따라 황산사(黃山寺)에서 강습을 익혔다. 그리고 백불암(百弗庵) 최흥원(崔興遠)후산(后山) 이종수(李宗洙)를 따라 학문을 익히기도 하였다.

1792년(정조 1) 형제가 함께 남성시(南省試)를 치렀으나 동생만 합격하였다. 이때 고관(考官)이 그의 재종숙(再從叔)이었는데, 시험에 대한 한마디의 언급도 없었다. 김희소는 동생의 합격으로만 만족한 뒤 더는 과거에 뜻을 두지 않고 주자(朱子)와 퇴계(退溪)의 유집을 탐독하였다.

집이 가난하여 끼니를 잇지 못하였음에도 개의치 않았으며 자개봉(紫盖峯) 밑에 초가집을 짓고 ‘문천거사(文泉居士)’라 호하며 교천서숙(交川書塾)에 섬학소(贍學所)를 세워 후진 양성에 힘썼다. 김희소는 산림에 숨어 궁곤하게 지내면서 일생의 정력을 쏟아 학문에 힘써 향리의 모범이 되었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는 『문천집(文泉集)』 4권 2책이 전한다. 이 가운데 「배의사쌍절청포상언초(裵義士雙節請褒上言草)」는 임진왜란 때 배인길(裵寅吉) 부부가 적과 싸우다 장렬하게 전사했으나 아직까지 포상을 받지 못하고 있으므로 포상해 줄 것을 청원하는 초안문이다. 「거가차록(居家箚錄)」은 사서오경을 읽다가 기록해 둔 의문점을 여러 가지 참고 서적을 대조하여 해석하고 자신의 의견을 첨가한 해석서로 김희소의 학문에 대한 척도를 잘 보여 준다.

「만문록(晩聞錄)」은 젊었을 때는 훈고(訓詁)를 공부하였으나 늙어가면서 경학(經學)과 성리(性理)의 심오함을 느끼고 선현들의 이론을 참고하여 자기의 소감을 기록한 글이다. 「오계잠(五戒箴)」은 수신의 요목을 기록한 것으로, 근신(謹愼)·구악서(驅惡書)·망희노(妄喜怒)·안정(安靜) 등을 규정하고 시행의 방법을 제시한 글이다.

[묘소]

묘소는 경상북도 봉화군 물야면 응방산(鷹坊山)에 있다.

[상훈과 추모]

이조참판에 증직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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