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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287
한자 金尙憲
영어음역 Gim Sangheon
이칭/별칭 숙도(叔度),청음(淸陰),서간노인(西磵老人),석실산인(石室山人),문정(文正)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
성별
생년 1570년(선조 3)연표보기
몰년 1652년(효종 3)연표보기
본관 안동
대표관직 좌의정

[정의]

조선 전기 안동에 은거한 문신.

[가계]

본관은 안동(安東). 자는 숙도(叔度), 호는 청음(淸陰)·석실산인(石室山人)·서간노인(西磵老人). 석실산인은 중년 이후 양주 석실(石室)에 은거하면서 사용했으며, 서간노인은 병자호란 직후 안동에 은거하면서 사용하였다. 증조부는 김번(金璠), 할아버지는 군수 김생해(金生海), 아버지는 돈령부도정 김극효(金克孝), 어머니는 좌의정 정유길(鄭惟吉)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상헌은 한성부 장의동 청풍계(현 서울특별시 종로구 청운동)에서 태어났으며, 세 살 때 큰아버지인 현감 김대효(金大孝)에게 입양되었다. 1585년(선조 18) 월정(月汀) 윤근수(尹根壽) 문하에서 수업하면서 진한고문(秦漢古文)을 수용하고 김식(金湜)에서 김덕수(金德秀)를 거쳐 윤근수로 이어지는 도학(道學)을 공부하였다. 또 이정구(李廷龜)·신흠(申欽)·장유(張維)·이식(李植)·김류(金瑬)·신익성(申翊聖)·이경여(李敬輿)·이경석(李景奭)·김집(金集) 등과 교유하였다.

1590년 진사가 되고 1596년 임진왜란 중에 실시한 정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부정자에 임명되었으며 이후 부수찬, 좌랑, 부교리를 거쳤다. 1601년 32세의 나이로 제주도안무어사로 차출되어 길운절(吉雲節) 등이 일으킨 반란의 진상을 파악하고 왕명을 전하였는데 그 6개월간의 경과를 기록한 『남사록(南槎錄)』이 전한다.

1626년(인조 4) 명장 모문룡(毛文龍)의 무고를 해명하기 위해 정사(正使) 남이웅(南以雄), 서장관(書狀官) 김지수(金地粹) 등과 함께 성절사겸사은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때 당시 육로는 누루하치[奴爾哈齊]가 장악하고 있어 부득이 해로로 갔는데, 당시 사행 중의 견문을 기록한 『조천록(朝天錄)』이 전한다.

1637년 2월에 인조가 삼전도(三田渡)에서 청 태종에게 삼배구고두의 치욕을 당하자 항복문서를 찢어버리고 곧바로 선영이 있는 현재의 경상북도 안동시 풍산읍 소산리로 내려와 1년 동안 지내다가 이듬해 현재의 풍산읍 서미리로 들어가 목석거(木石居, 현재 김상헌 유허비가 남아 있음)라는 산방을 짓고 은자적 삶을 영위하였다. 1640년에 신득연(申得淵)의 고변으로 청나라 심양(審陽)으로 잡혀가 6년 동안 옥고를 치렀다. 이때 남긴 『설교집(雪窖集)』이 전한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청음집(淸陰集)』이 있으며 저술로 『조천록』, 『남사록』, 『풍악문답(豊岳問答)』, 『남한기략(南漢紀略)』 등이 있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덕소리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문정(文正)이며, 1653년(효종 4)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1661년(현종 2) 효종 묘정을 시작으로 이후 남양주 석실서원(石室書院), 정주 봉명서원(鳳鳴書院), 개성 숭양서원(崧陽書院), 제주 귤림서원(橘林書院), 정평 망덕서원(望德書院), 함흥 창덕서원(彰德書院), 경성 경산서원(鏡山書院), 의주 기충사(紀忠祠), 광주 현절사(顯節祠), 상주 서산서원(西山書院), 종성 화곡서원(華谷書院), 안동 서간사(西磵祠), 예안 운계사(雲溪祠), 정평 모현사(慕賢祠) 등에 제향되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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