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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260
한자 金㙆
영어음역 Gim Goeng
이칭/별칭 자야(子野),귀와(龜窩)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민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경상북도 안동시 일직면 귀미리 지도보기
성별
생년 1739년(영조 15)연표보기
몰년 1816년(순조 16)연표보기
본관 의성
대표관직 예조참판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의성(義城). 자는 자야(子野), 호는 귀와(龜窩). 아버지는 생원 김광헌(金光憲), 처는 진성이씨(眞城李氏)로 이의술(李宜荗)의 딸이다.

[활동사항]

김굉은 17세 때 대산(大山) 이상정(李象靖)의 문하에 들어가 수학하였다. 1773년(영조 49) 생원시에 1등으로 합격하고, 1777년(정조 1) 증광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으며 승문원정자, 성균관전적을 지냈다. 1781년 스승 이상정이 죽자 이우(李堣), 이완(李埦) 등과 함께 스승의 유문을 정리하였다.

1788년 귀향하여 강학에 힘쓰며 언론으로써 사림정치에 참여하였다. 청성서원(靑城書院) 사림들의 요청으로 『영가지(永嘉誌)』의 교정 작업을 주도하였다. 그 뒤 사헌부지평, 단양군수, 세자시강원문학, 홍문관교리지제교겸경연시독관, 이천도호부사를 거쳐 77세 되던 해에 예조참판겸동지경연춘추관사에 제수되었다.

김굉은 학문에 대한 열정이 남달라 귀담서당(龜潭書堂)과 모산서당(茅山書堂)에서 강회를 열어 후학을 양성하였다. 평소 “학문의 요체는 ‘경(敬)’자 하나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하며 순수하게 익히는 것을 공부하는 방법으로 삼았다. 문학에 남달리 뛰어났고 필법이 높아 능히 한 체제를 이룰 만하였으나 성품이 담박하여 저술을 좋아하지 않았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귀와집(龜窩集)』이 있는데 원집 14권 7책, 부록 1책, 속집 3책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집에는 서문과 발문이 없으며 1846년(헌종 12) 문집이 완성되었다. 속집은 1900년에 김굉의 현손인 김도화(金道和) 등이 원집에서 누락된 자료를 모아 생담정사(笙潭精舍)에서 간행하였다.

[묘소]

묘소는 안동부(安東府) 비안현(比安縣) 화장(花庄, 현 의성군 비안면)에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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