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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198
한자 姜恰
영어음역 Gang Heup
이칭/별칭 잠노(潛老),정오(正吾),잠은(潛隱),이오당(二吾堂),정민공(貞敏公),태백오현(太白五賢)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황만기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신
출신지 서울특별시
성별
생년 1602년(선조 35)연표보기
몰년 1671년(현종 12)연표보기
본관 진주
대표관직 산음현감

[정의]

조선 후기 안동 지역에서 활동한 문신.

[가계]

본관은 진주(晉州). 자는 정오(正吾), 호는 잠은(潛隱)·이오당(二吾堂)·잠노(潛老). 할아버지는 홍문관응교를 지낸 강덕서(姜德瑞), 아버지는 의금부도사 강윤조(姜胤祖), 어머니는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숙(趙璹)의 딸이다. 동생이 도은(陶隱) 강각(姜恪)이다.

[활동사항]

강흡은 한양(漢陽)에서 태어났다. 어려서 김영남으로부터 『사략(史略)』을 배웠는데 몇 편만 배우고 나머지는 스스로 그 뜻을 익혔다. 이후 이이(李珥)성혼(成渾)의 학통을 이어받은 신흠(申欽)김장생(金長生)의 문하에서 수학하였다. 1630년(인조 8) 진사시에 합격하였으며, 1635년 성균관유생으로 송시형(宋時瀅)과 함께 이이, 성혼의 문묘 배향을 소청하였는데, 논리 정연하여 서인들의 존중을 받았다. 세자익위사세마·세자익위사시직·세자익위사부수를 역임하였다.

효행으로 천거되어 성현도찰방(省峴道察訪)을 거쳐 산음현감을 역임하였다. 병자호란 때 노친을 모시고 태백산 아래 춘양현(春陽縣) 법전리(法田里: 현 봉화군 법전면 법전리)로 피난하였다. 인조가 1637년 삼전도(三田渡)에서 청나라에 무릎을 꿇자 통분함을 이기지 못하고 벼슬을 버리고 그대로 은거하였다. 정양(鄭養), 심장세(沈長世), 홍석(洪錫), 홍우정(洪宇定) 등의 학자들과 교유하였는데 훗날 그들과 함께 태백오현(太白五賢)으로 추앙받았다.

30여 년 동안 은거하면서 혈통이나 고하를 막론하고 모두를 반갑게 맞이하여 즐겼으며 향리에서 강흡를 비방하는 이가 한 사람도 없었다. 스스로 호를 잠노(潛老)라고 하였는데, 이는 중국 동진(東晉) 때의 시인 도잠(陶潛, 도연명)이 벼슬길에 나아가는 것을 후회하고 자연으로 돌아갔던 뜻을 취한 것이다. 또 태백오현과의 교유를 위해 정자를 짓고 이오당(二吾堂)이라 하였다. 이오당이란 이름은 ‘낙오천종오년(樂吾天終吾年: 자연을 즐기다가 생을 마침)’에서 취했다고 한다.

[저술 및 작품]

저서로 『잠은선생실기(潛隱先生實記)』 6권 2책이 전한다.

[묘소]

묘소는 경기도 파주시 야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시호는 정민(貞敏)이며, 이조참판에 추증되었다. 후손들이 매년 사덕정(俟德亭)에 모여 강흡의 덕행을 추모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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