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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114
한자 安東權氏
영어의미역 Andong Gwon Clan
이칭/별칭 영가권씨(永嘉權氏),화산권씨(花山權氏)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성씨/성씨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집필자 김복영

[정의]

권행을 시조로 하는 경상북도 안동시 세거 성씨.

[개설]

안동권씨권행(權幸)을 시조로 하여 천년 이상 안동에 세거해온 안동의 대표적인 성씨이다.

[연원]

안동권씨의 시조 권행은 대대로 안동에 살던 토족으로 본래 성은 김씨(金氏)이다. 김선평(金宣平), 장길(張吉)과 함께 고려 태조를 도와 후백제군을 격퇴한 공로로 권씨(權氏) 성을 하사받고 삼한벽상공신삼중대광태사아보(三韓壁上功臣三重大匡太師亞父)에 봉해졌으며 후삼국 통일 후 태사(太師)의 작위를 받았다. 후손들이 권행을 시조로 하고 안동을 본관으로 삼았다.

[입향경위]

안동권씨는 시조로부터 10세 때에 권수중(權守中)을 파조로 하는 종파, 권시중(權時中)을 파조로 하는 부호장공파, 권수평(權守平)을 시조로 하는 추밀공파, 권수홍(權守洪)을 시조로 하는 복야공파, 권체달(權棣達)을 파조로 하는 동정공파, 권지정(權至正)을 파조로 하는 좌윤공파, 권영정(權英正)을 파조로 하는 별장공파, 권통의(權通義)를 파조로 하는 부정공파, 권인가(權仁可)를 파조로 하는 시중공파, 권숙원(權叔元)을 파조로 하는 중윤공파, 권사발(權思拔)을 파조로 하는 군기감공파, 권대의(權大宜)를 파조로 하는 광석파, 권추(權樞)를 파조로 하는 호장공파, 권척(權倜)을 파조로 하는 검교공파, 권형윤(權衡允)을 파조로 하는 급사중공파 등 15개의 큰 파로 분파 되어 안동의 각 지역에 세거 하고 있다.

안동에 거주하는 안동권씨의 대다수는 권수홍의 후손인 복야공파이다. 권수홍의 둘째 손자 권윤평(權允平)의 증손으로 예의판서를 지내던 권인(權靷)은 조선 개국 때에 벼슬을 버리고 낙향하여 서후 송파(현 서후면 교리)에 정착하였는데 후손들이 권인을 파조로 하여 판서공파라 자칭한다. 판서공파는 풍산읍 노리에 세거하였다. 권인의 아들 권후(權厚)는 중랑장이고 손자 권계경(權啓經)은 횡성현감을 지냈다.

권계경의 아들 권개(權玠)는 벼슬이 수의부위이고, 권개의 맏아들 권숙형(權叔衡)은 사맹이고 『영가지(永嘉誌)』를 편찬한 권기(權紀)는 권숙형의 현손이다. 퇴계(退溪) 이황(李滉)의 문인으로 문명이 높은 권호문(權好文, 1532~1557)은 권개의 둘째 아들 권숙균(權叔均)의 손자이다. 권개의 동생 권곤(權琨)의 맏아들 권사영(權士英)은 아들 3형제를 두었는데 위로 두 아들은 후사가 없고 3자 권응희(權應禧)의 후손은 서후면 명리 일대에 살고 있다.

권곤의 둘째 아들 권사빈(權士彬, 1449~1535)은 송파에서 북후면 도촌리로 옮겨서 정착하였는데 권사빈의 차자 권벌(權橃, 1478~1548)은 봉화 유곡리로, 삼자 권려와 사자 권장(權檣)은 예천 저곡리로 이거하여 나가고 도촌리에는 맏아들 권의(權檥)의 장자 권심기(權審己)와 6자 권심행(權審行)의 후손이 세거하게 되었으나 권심행의 후손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권심행의 아들 권위(權暐, 1552~1616)선조 때 학자로 도계서원(道溪書院)에 제향되었다. 권의의 다른 아들 권심언(權審言), 권심사(權審思), 권심변(權審辯)은 각각 예천 저곡, 감천, 봉화 명호로 이거하였다. 권수홍의 셋째 손자 권윤보(權允保)는 중문지후를 지냈는데 풍천면 가곡리에 정착한 안동권씨는 문과에 급제하여 지서주자사를 지낸 권윤보의 증손 권시중(權時中)을 파조로 하는 서주공파의 후예이다. 권시중의 맏집 손자 효자 권질(權晊)의 아들 권시(權偲)는 문과에 올라 교리를 지냈고, 권시의 아들 권렬도 문과에 급제하여 광주목사를 지냈는데 영천 신령으로 이거하였다.

권시중의 둘째집 손자 판관 권심(權深)의 맏아들 권항(權恒)은 1403년에 평해에서 태어나 1441년 문과에 급제하여 영천군수를 지냈는데 풍산현에 살던 류서(柳湑)의 사위가 되어 가곡리에 정착하였다. 권항의 맏아들 권이(權邇)는 현감을 지냈고, 둘째 권건(權建)은 1477년 알성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하여 이조좌랑을 지냈다. 도승지를 지내고 갑자사화 때 죽임을 당한 화산(花山) 권주(權柱, 1457~1505)은 권이의 아들이며 이황의 장인 사락정(四樂亭) 권질(權礩)의 아버지다.

권주의 차자 권전(權磌)도 문과에 급제하여 벼슬에 나갔는데 기묘사화에 연루된 선비라 하여 장살을 당하였다. 양대가 화를 당하고 가세가 기울자 권주의 현손 권경행(權景行)이 1620년 용궁으로 이거 하였으나 아들 권박(權搏, 1607~1661)권박의 조카 권선(權愃, 1639~1682)이 문과에 급제하여 군수와 목사로 임관하면서 다시 가일 옛 기지를 일으키게 되었다. 권박의 손자 병곡(屛谷) 권구(權榘, 1672~1749)는 학문과 문장이 뛰어나 사림의 추앙을 받았으며, 권구의 아들 권진(權縉), 권집(權緝), 수곡(樹谷) 권보(權溥) 삼형제도 모두 학문에 힘써서 후손이 매우 번창하였다.

일제강점기에는 풍기광복단, 대한광복회 등에서 활약한 권준희(權準羲, 1849~1936), 풍산소작인회, 고려공산청년회 등에서 활약한 권오설(權五卨, 1897~1930), 신흥청년동맹, 6·10만세운동 등에 참여한 권오상(權五尙, 1900~1928)을 비롯하여 많은 독립유공자를 배출하였다.

권통의를 파조로 하는 부정공파는 파조의 5세손 권백종(權伯宗)의 효자비각이 안기동에 있는 것으로 보아 처음부터 부내에 살고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권백종의 아들 경혜공 권전(權專, 1371~1441)단종의 외조부이다. 단종 폐위 때 권전 일족은 거의 멸문되고 겨우 살아남은 혈육이 군위군 효령면에 거주하게 되었고, 어린나이에 영해로 유배된 종질 권책(權策)의 후손은 이후 크게 번창하였다.

안동에 있는 부정공파는 권백종의 형 권덕생(權德生)의 후손이다. 권덕생의 장자 권자형(權子衡)의 증손으로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병마평사를 지낸 권징(權徵, 1426~1467)의 증손 권위기(權偉器)인재(忍齋) 권대기(權大器, 1523~1587)이황의 문인으로 이름이 있었다. 권위기의 손자 호양(湖陽) 권익창(權益昌, 1562~1645)월천(月川) 조목(趙穆)의 문인으로 학식이 높았으나 병자호란을 격으면서 입신의 뜻을 버리고 안동 부내의 와룡 늪실로 이거하였다.

권위기의 동생 권대기와룡면 이상리로 이거하였는데 맏아들은 세자사부 송소(松巢) 권우(權宇, 1552~1590)이다. 권우의 큰아들 권익민(權益民)은 이상리에 살고, 작은아들 권익린(權益鄰)은 상주로 이거하여 나갔다. 영조 때 문과에 급제하여 지중추에 오른 유학자 권상일(權相一, 1679~1760)권익린의 현손이다. 권우의 동생으로 생원시에 오른 진봉(震峯) 권굉(權宏)과 문과에 급제하여 봉례가 된 이우당(二愚堂) 권환(權寏)임하면 임하리로 이거하여 나갔다.

[현황]

복야공파인 권숙형의 후손은 풍산읍 노리, 서후면 교리, 길안면 대사리 등지에 살고 있다. 부정공파인 권질의 후손은 현재 영덕군 영해면 창수면 일원에 거주하고 있다.

또 안동에 있는 부정공파 권덕생의 종파는 현재 와룡면 가야리에 세거하고 있다. 권환의 후손들은 현재 임하면 임하리 종가를 중심으로 살아가고 있다. 권덕생의 차자 권을형(權乙衡)의 후손 일부는 남후면 검암리, 남선면 원림리에 살고 있다.

기타 동정공파계 후손들이 남선면 구미리, 길안면 용계리, 퐁산읍 막곡리, 시내 법상동 등지에 흗어져 살고 있고, 부호장공파계 후손 일부가 남선면 신석리에 살고 있다. 남치리(南致利)의 사위가 되어 일직면에 정착한 시중공파계 권건(權健)의 후손이 일직면 광연리에 살고 있고, 검교공파계 권준(權準)의 후손들이 풍천면 갈전리에 살고 있다.

[관련유적]

권태사 묘와 재사가 서후면 성곡리 능골에 있고 유물이 시내 북문동 태사묘에 보관되어 있다. 풍산읍 막곡리권호문의 묘와 청성서원(靑城書院)이 있고 서후면 교리에 종가인 관물당(觀物堂)이 있다. 북후면 도촌리에 도계서원, 만대헌(晩對軒), 오선정(五先亭), 금오정이 있고, 풍천면 가곡리가일(佳日) 입향조 권항을 비롯하여 권건, 권주, 권질, 권구 등의 묘와 화산신도비(花山神道碑), 선원강당, 도동서사(道東書舍), 종택인 시습재(時習齋) 등이 있다. 와룡면 늪실에 부정공파 종가와 늪실 입향조 권익창의 묘가 있고, 와룡면 이상리임하면 임하리에 각각 권우송소 종택권환이우당 종택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5.20 [입향경위] 수정 <변경 전> 권시중의 둘째집 손자 판관 권심(權深)의 둘째아들 권항(權恒)은 1403년에 평해에서 테어나 <변경 후> 권시중의 둘째집 손자 판관 권심(權深)의 맏아들 권항(權恒)은 1403년에 평해에서 태어나
2012.05.21 가계 수정 오 : 권시중의 둘째집 손자 판관 권심(權深)의 맏아들 권항(權恒)은…… 정 : 권시중의 둘째집 손자 판관 권심(權深)의 둘째아들 권항(權恒)은…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부분 확인 후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3.05.20
권** 본문 중 <권시중의 둘째집 손자 판관 권심(權深)의 둘째아들 권항(權恒)은...> 잘못된 오류입니다. 권항은 둘째아들이 아니라 큰아들이 맞고, 권종은 차자였습니다. 출처:안동권주종손가문서(경상북도 안동시 풍천면 가곡리의 권주(權柱) 종손가에 전하는 고문서),소장처: 한국국학진흥원, 문화재지정번호: 보물 제549호에 나와있습니다. 연락바랍니다. 2013.05.14
관** 권홍택 님.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내용은 안동권씨 중앙종친회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감사합니다. 2012.05.21
관** 권기동 님.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해당 내용 수정하였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5.21
권** 권홍택인데요 판서공파 에요 근데요 궁금해서 저에 시조는누구인가 그리고몇대손인가 그리고돌림자는뭐가요 시조는 뭐해는지알고싶어요 2012.05.20
권** 본문 중 <권시중의 둘째집 손자 판관 권심(權深)의 맏아들 권항(權恒)은...> 잘못 된 오류입니다. 權恒은 맏아들이 아니고 둘째 아들이며 권심의 맏아들은 權悰으로 그 후손은 강릉으로 이거하여 큰 일가를 이루고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을 알고 싶으시면 연락 주세요. 2012.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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