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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1017
한자 敬堂集
영어음역 Gyeongdangjip
영어의미역 Gyeongdang Garland
분야 역사/전통 시대,문화유산/기록 유산
유형 문헌/전적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388[경동로 1375]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정명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문집|시문집
관련인물 장흥효(張興孝, 1564~1633)|이현일(李玄逸, 1627~1704)|장상규(張相奎)
저자 장흥효
편자 이휘일(원집)|장상규(속집)
간행자 이현일|장상규
저술연도/일시 1633년연표보기
간행연도/일시 1693년(초간본)|1921년(후쇄본)연표보기연표보기
권수 4권(원집 2권, 속집 2권)
책수 2책(원집 1책, 속집 1책)
가로 21.7㎝(초간본)|19.9㎝(후쇄본)
세로 16.8㎝(초간본)|15.5㎝(후쇄본)
표제 敬堂先生文集(초간본)|敬堂先生續集(후쇄본)
간행처 경광서원(초간본, 후쇄본)지도보기
소장처 서울대학교 규장각|안동대학교 도서관
소장처 주소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동 산 56-1[관악로 1]|경상북도 안동시 송천동 388[경동로 1375]

[정의]

1693년 간행된 조선 중기 문신 장흥효의 문집.

[개설]

안동이 본관인 장흥효김성일(金誠一, 1593~1658), 류성룡(柳成龍, 1542~1607)의 문하에서 수학하였고, 경광서원(鏡光書院)에 제향되었다. 역학(易學)에 조예가 깊었다. 이현일·이휘일 등의 제자를 길러냄으로써 이재(李栽)·이상정(李象靖)·류치명(柳致明)·김흥락(金興洛)으로 이어지는 학풍을 만들었다.

[편찬/발간경위]

『경당집』 원집은 장흥효의 외손인 이휘일(李徽逸, 1619~1672)이 저자의 유고인 「일원소장도(一元消長圖)」와 시문을 정리하는 한편, 서문·후지(後識)·행장·묘지 등의 부록 문자의 저술을 청탁하여 편차했으나 끝내 간행하지는 못했다. 이후 편자의 동생인 이현일이 습유(拾遺) 2편을 추가하여 1693년에 간행하였다. 간행 장소는 여러 기록을 토대로 보았을 때 경광서원인 듯하다. 속집은 저자의 후손인 장상규가 재차 자료를 수집하여 2권 1책으로 편집하고, 류범휴(柳範休)의 교정을 거쳐 1818년 경광서원에서 간행하였다. 이후 「광풍정중건기」, 「광풍정중건상량문」, 「봉림정사기」 등을 추가하여 1921년에 재차 간행하였다.

[서지적 상황]

『경당집』 원집과 속집은 서울대학교 규장각, 성암고서박물관 자료실,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한국국학진흥원 도서관, 안동대학교 도서관 등에 소장되어 있다. 본서의 저본은 원집의 경우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는 초간본이고, 속집은 안동대학교 도서관에 소장되어 있는 후쇄본이다.

[형태]

『경당집』은 원집 2권 1책, 속집 2권 1책의 목활자본으로 권수제는 경당선생문집(敬堂先生文集), 판심제는 경당집(敬堂集)이다. 어미는 상하이엽화문어미(上下二葉花紋魚尾)로 크기는 초간본이 가로 21.7㎝, 세로 16.8㎝이며, 후쇄본이 가로 19.9㎝, 세로 15.5㎝이다. 행수는 10행이며, 한 행의 자수는 19자, 주석은 쌍행이다.

[구성/내용]

『경당집』 원집은 저자의 유작에 앞서, 권유(權愈)의 서문과 목차가 있다. 권1에는 25수의 시와 부(賦) 1편, 사(辭) 2편, 서(書) 6편, 답문(答問) 4편, 증언(贈言) 5편, 제문 2편, 잡저 5편, 습유(拾遺) 2편이 있다. 이중 편지에는 정구(鄭逑), 장현광(張顯光), 이휘일 등에게 답한 것이 있으며, 잡저에는 「무극태극유무변(無極太極有無辨)」, 「학봉서애양선생언행록(鶴峯西厓兩先生言行錄)」 등이 있다. 문집 끝에 이현일의 발문이 있다.

속집은 1811년에 김굉(金㙆)이 지은 서문이 있고, 그 뒤에 목차가 정리되어 있다. 권1에는 시가 30수 있고, 서 1편, 제문 4편, 잡저 3편이 있다. 권2 부록으로 만사, 제문, 묘갈명, 「언행록습유(言行錄拾遺)」, 「제월대기(霽月臺記)」, 「일원소장도개본설변(一元消長圖改本說辨)」 등이 실려 있다. 이 밖에도 「광풍정중건기」 등과 같은 기록과 함께 문집 끝에 류범휴의 발문이 있다.

[의의와 평가]

『경당집』의 내용 가운데, 「일원소장도」는 저자의 몇 안 남은 저술 중의 하나로, 저자의 평생 공부인 동시에 퇴계학의 연원이다. 또한 이황에서 시작하여 김성일을 거쳐 김흥락으로 이어지는 하나의 학문적 지류를 형성하는 데 공헌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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