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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794
한자 伴鷗亭齋舍
영어음역 Bangujeong
영어의미역 Bangujeong Pavilion
분야 생활·민속/생활,문화유산/유형 유산
유형 유적/건물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 486[옹정골길 81-7]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정진영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문화재 지정 일시 1992년 7월 18일연표보기 - 반구정재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8호 지정
문화재 지정 일시 2021년 11월 19일 - 반구정재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재지정
성격 누정
양식 민도리 형식 홑처마 팔작지붕
건립시기/일시 1560년경연표보기
정면칸수 4칸
측면칸수 1.5칸
소재지 주소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 486[옹정골길 81-7]지도보기
소유자 고성이씨 법흥 문중
문화재 지정번호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에 있는 조선 중기 정자.

[개설]

반구정재사(伴鷗亭齋舍)안동 임청각(安東臨淸閣)을 지은 이명(李洺)의 여섯째 아들 이굉(李肱)이 건립한 정자이다. 이굉은 자가 계임(季任), 호가 반구옹(伴鷗翁)이다. 1531년(중종 26) 사마시에 합격하고 음보로 예빈시별제(禮賓寺別提)에 제수되었으나 곧 사직하였다. 이후 안동부(安東府)의 남쪽 낙동강 건너편에 반구정을 짓고 자적하였다. 반구정재사이굉의 자호인 반구옹에서 따온 것이다.

원래 반구정재사 터는 이명귀래정(歸來亭) 동편의 수려한 강산을 동경하여 이곳에 정자를 지어 형 이굉(李汯)과 함께 노년을 보낼 것을 기약하였으나 성사하지 못한 곳이다. 이명은 형인 이굉을 따라 벼슬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그 후 형인 이굉은 강 아래에 귀래정을 짓고 이명은 강 건너편 상류에 안동 임청각을 지어 거처하였다. 그러나 강물이 가로막고 있어서 이굉이명은 자주 만나지 못하였다. 그 뒤 반구정재사이명의 아들 이굉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이굉 또한 벼슬에 뜻이 없어 안동 지역으로 돌아와 은거하니 반구정재사고성이씨(固城李氏)가 내리 삼세(三世) 동안 벼슬을 그만두고 수양하던 터전이 되었다.

반구정재사에 대한 옛 표현을 빌리면 ‘까마득한 절벽 밑에 심연청류(深淵淸流)가 구비치고, 배후에는 갈라연봉이 뻗어 내리고, 동북쪽엔 무산(巫山)이 아름답고, 대안(對案)엔 영남산(映南山)이 다정하며, 멀리 학가산(鶴駕山) 영봉이 북망(北望)되고, 상하에 백사(白沙) 수십 리가 평임(平臨)하며, 안전(眼前)에는 수천가읍(數千家邑)에 일대장림(一大長林)이 들어 있는 절승이다’라고 하였다.

[위치]

반구정재사경상북도 안동시 정상동 486번지[옹정골길 81-7]에 있다. 귀래정 동쪽에 남향으로 앉아 있고 주위에는 방형(方形)의 담장을 둘렀다. 경상북도 안동시에서 영호대교를 건너 좌회전하여 강변도로로 600m쯤 올라가면 길 오른편에 성희여자고등학교가 나온다. 여기서 800m를 더 올라가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 갈림길에서 직진하면 용정교가 나타나고, 우측으로 접어들면 안포선이다. 갈림길 사이에는 이굉(李汯)의 정자인 귀래정이 자리 잡고 있다. 귀래정으로 가는 길로 접어들어 마을 쪽으로 조금 들어가면 반구옹 이굉의 아들인 이용(李容)의 어은정(漁隱亭)이 나타나는데, 반구정재사는 여기서 동쪽으로 조금만 더 가면 된다.

[변천]

반구정재사는 1560년경 이굉이 건립하였다. 처음에는 정자 건물만 있었는데, 당시 이곳에서 안동 유림의 시회와 향회가 자주 열림에 따라, 많은 선비가 출입하거나 숙식을 함으로써 동재와 서재까지 건축하게 되었다. 여기에다 장판각과 주사(廚舍)까지 건축하여 건물이 확장되었다.

1700년(숙종 26)에는 이명, 그의 아들 이굉과 손자 이용 삼대가 벼슬을 버리고 은둔한 것을 기리기 위하여 고성이씨 삼세유허비(固城李氏三世遺虛碑)가 건립되었다. 그 후 퇴락하여 빈터만 남았던 것을 1741년(영조 17) 개축하였다. 반구정 재사는 1905년에 중건된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반구정은 1945년의 화재로 소실된 것을 1946년에 중건한 것이다.

[형태]

전체적인 배치는 정자인 반구정을 중심으로 전방좌우에 각각 정면 3칸, 측면 1칸의 동재·서재가 있고, 그 앞에는 목판(木板)을 보관하기 위한 정면 1칸, 측면 1칸의 장판각(藏板閣)과 고성이씨 삼세유허비(固城李氏三世遺虛碑)와 비각이 자리 잡고 있다. 재사가 있는 곳보다 약1m가량 높은 지대 위에 반구정이 자리 잡고 있다.

반구정은 정면 4칸, 측면 1.5칸 규모로 정면 가운데 2칸에 마루방을 앉히고 그 양쪽에 온돌방을 두었다. 우측 온돌방을 제외한 나머지에는 앞쪽에 툇마루를 시설하고, 배면 모두에는 쪽마루를 깔았다. 건물의 구조 양식은 자연석 기단 위에 막돌 초석을 놓고 네모기둥을 세운 5량가 민도리 형식 홑처마 팔작지붕집이다.

동재와 서재는 좌우 동형의 평면 형식을 취하고 있는데, 1칸 마루와 2칸통 온돌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온돌방 정면의 쌍여닫이창은 창틀 중앙에 작은 기둥인 가운데설주가 세워져 있는 영쌍창이다. 영쌍창은 18세기 이후에는 거의 나타나지 않는 고식의 창호 형식으로 특히 이 건물의 것은 문을 닫으면 가운데설주가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한 이유는 가운데설주가 틈새 바람을 막아 주는 역할을 하도록 한 것이다. 이러한 유형을 풍소란형이라 부른다.

대문채는 동쪽 끝에 아래채 방이 1칸 놓여 있고 그 좌측으로는 대문간·마판·고방·방앗간이 각 1칸씩 연접해 있다. 몸채는 2칸 대청을 중심으로 좌측에는 앞뒤 2칸통의 안방과 부엌이 좌익사(左翼舍)를, 우측에는 각 1칸씩의 사랑방·부엌·중간방이 연이어져 우익사(右翼舍)를 이루게 하였다.

[현황]

반구정은 재사와 함께 1992년 7월 18일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25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청 고시에 의해 문화재 지정번호가 폐지되어 경상북도 문화재자료로 재지정되었다. 현재 소유자 및 관리자는 고성이씨 법흥 문중이다. 2000년 초 안동시 예안면 기사리에 있던 고성이씨 안동 입향조인 이증(李增)의 신도비와 재사인 수다재(水多齋)가 반구정 인근으로 이건됨에 따라 반구정 주변은 고성이씨 문중에 더욱 뜻깊은 장소가 되었다. 반구정재사는 예로부터 주변의 풍광이 아름다워 ‘화산갑경(花山甲景)’이라 불렸으나 현대화와 무분별한 도시 개발로 인해 아름다웠던 풍광은 많이 사라졌다.

[참고문헌]
이용자 의견
강**** 둘째행의 이름 이굉은 육달월변 부수의 "팔뚝굉"으로 써야 합니다
  • 답변
  • 디지털안동문화대전을 이용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지적하신 사항은 수정하였습니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2015.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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