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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404
한자 安東府
영어음역 Andong-bu
영어의미역 Andong-bu Administrative Organization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제도/법령과 제도,지명/고지명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시대 고려/고려,조선/조선
집필자 김명자(역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제정연도/일시 고려 태조|조선 전기
시행연도/일시 고려 태조|조선 전기
폐지연도/일시 1895년연표보기

[정의]

고려와 조선시대 안동 지역에 설치된 지방 통치 행정 기관.

[개설]

경상도의 도역(道域)은 산천을 경계로 한 합리적인 도제 확립의 필요에 따라 1413년(태종 13) 상주목(尙州牧) 소속 옥천·황간·영동·청산·보은을 충청도에 귀속시킴으로써 죽령을 북계(北界)로 하고 지리산을 서계(西界)로 하여 설정되었다. 감영은 개국초 경주에 있었으나 1407년(태종 7)경 상주로 옮겼다.

또한 이 때 경상도가 타도에 비해 지역이 넓고 인구가 많다는 이유로 낙동강을 경계로 하여 서쪽을 우도, 동쪽을 좌도로 분도(分道)하기도 했으나 별도의 감영은 설치하지 않았다. 그 뒤 여러 차례의 감영 이전과 분리·통합을 거듭하다 1601년(선조 34) 체찰사(體察使) 이덕형(李德馨)의 건의로 대구부(大丘府)에 감영을 설치하여 좌·우도를 총괄하게 한 이래 조선 말기까지 그대로 지속되었다. 경상도에 소속된 주·부·군·현을 좌·우도로 나누어 살펴보면 다음의 표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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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도 소속 주부군현 현황

[관련기록]

안동부가 나타나는 기록으로는 『세종실록지리지(世宗實錄地理志)』·『동국여지승람(東國輿地勝覽)』·『여지도서(輿地圖書)』·『영가지(永嘉誌)』·『경상도읍지(慶尙道邑誌)』 등이 있다.

[변천]

안동은 신라 때는 고타야군(古陀耶郡)이었다. 신라 경덕왕 때 고창군(古昌郡)으로 고쳤고, 그 뒤 일계군(一界郡), 지평군(地平郡), 화산군(花山郡), 고령군(古寧郡), 고장군(古藏郡), 석릉군(石陵郡), 안동부(安東府), 영가군(永嘉郡) 등으로 지명이 자주 바뀌었다.

고려 태조가 후백제의 왕 견훤(甄萱)병산(甁山)에서 싸워 이겼는데, 여기에 고을 성주 김선평(金宣平)권행(權幸), 장길(張吉)이 태조를 도와 크게 공을 세움으로써 김선평을 대광(大匡)으로 삼고, 권행과 장길은 각각 대상(大相)으로 삼았으며, 고창군을 안동부로 승격시켰다. 후에 영가군으로 고쳤다.

성종은 길주자사(吉州刺史)로 하였고, 현종은 안무사(按撫使)로 고쳤으며, 또 지길주사(知吉州事)로 고쳤다가 뒤에 다시 안동부로 하였다. 1197년에 남쪽의 도적 김삼(金三)·효심(孝心) 등이 주(州)와 군(郡)을 위협하고 약탈하자 군사를 보내어 이를 평정하는데 안동부가 공을 세웠다 하여 도호부(都護府)로 승격시켰다. 1204년 동경(東京)의 야별초(夜別抄), 패좌 등이 무리를 모아 반란을 일으켰는데 안동부에서 이를 평정함으로써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격되었다.

충렬왕(忠烈王)이 1308년 복주목(福州牧)으로 고쳤고, 공민왕(恭愍王)이 1361년에 홍건적(紅巾賊)을 피하여 남으로 순행하였는데 이 때 안동부에 와서 머물렀다. 이에 고을 사람들이 정성껏 받들어 다시 승격시켜 안동대도호부로 하였다. 우왕(禑王)이 1383년에 안동도(安東道)로 만들어 원수(元帥)로 하여금 부사(府使)를 겸하게 하였다가 1388년에 다시 부사로 하였다.

조선 전기 안동부는 『세종실록지리지』가 편찬될 당시만 하더라도 본부(本府) 외에 임하현·풍산현·일직현·길안현·감천현·내성현·춘양현·재산현 등 8개의 속현과 개단부곡·소라부곡·소천부곡 등 3개의 부곡을 거느리고 있었다. 또한 소령체제에 따라 영해·순흥의 2개 도호부와 예천·영천(榮川: 영주)·영천(永川)·청송 등 4개 군및 의성·영덕·예안·하양·기천·인동·봉화·의흥·신녕·진보·비안 등 11개 현을 관할하고 있었다.

그러나 1530년(중종 25)에 편찬된 『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속현은 변함이 없으나 소속된 부곡은 개단·소천부곡으로 소라부곡은 춘양현에 예속됨으로써 제외되었다. 이러한 안동부의 속현 및 부곡 구성은 조선 후기까지 그대로 계승되는데, 그것이 정확하게 언제부터인지 확실하지 않으나 1491년(성종 22) 예안현감 김전의 상소에 이들 속현 및 부곡 10개를 나열하고 있는 점으로 보아 성종 때 이미 그 같은 체제가 확립되었음을 알 수 있다.

안동부는 1576년(선조 9) 자식이 어머니를 살해한 사건인 적자지변(賊子之變)으로 한때 현으로 격하된 적이 있었으나, 6년 뒤 원상 복구되면서 그 같은 행정 체제의 골격도 조선 전기의 그것을 답습하게 되었다. 『영가지』가 편찬되는 1608년까지만 하더라도 행정구역은 『동국여지승람』의 그것과 거의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또한 18세기 『여지도서』가 편찬될 당시 전국 속현의 주현화가 거의 마무리되어가고 있는 추세임에도 불구하고 안동부의 속현은 여전히 존재하고 있었다.

안동부는 1776년(영조 52) 8월 이도현(李道顯)·이응원(李應元)이 사도세자(思悼世子)의 죽음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는 상소를 올린 것을 계기로 현으로 격하되었다가 10년 뒤인 정조 9년(1785) 다시 대도호부로 복귀하는 곡절을 겪기도 했다. 그리하여 19세기 『경상도읍지』에 의하면 안동부의 속현은 일계현(日谿縣: 義城縣 玉山面)을 추가하여 9개로 변화하였다.

그러나 『여지도서』에도 행정 체제상 안동부에 예속된 것으로 나타나던 개단·소천부곡이 『경상도읍지』에서는 비로소 사라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이들 부곡이 정확하게 언제 소멸되었는지 알 수 없으나, 『영가지』에는 소천부곡이 춘양현에, 개단부곡이 내성현에 각각 소속된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현상은 『영가지』가 처음 편찬될 당시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기보다 1791년 교정 당시의 추세에 따른 것으로 판단된다. 그러나 각리조(各里條)에는 여전히 이들 부곡에 소속된 촌이 다른 속현과 대등하게 기술되고 있는 점으로 미루어 이 시기 안동부의 부곡은 행정적 편의를 위한 속현화와 더불어 관행적인 안동부의 직속화라는 과도기에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조선 전기 이래 지속적으로 추진되고 있던 향(鄕)·소(所)·부곡(部曲)의 주현화 또는 속현화 과정에도 불구하고 안동부에서는 그것이 조선 후기까지도 남아 있다가 뒤늦게 참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겠다. 그렇지만 면리제의 확립 과정에서 비교적 규모가 큰 소천부곡의 대부분 지역이 소천면으로 개편되면서도 면리 체계에서 소천부곡이 여전히 존재하는 점으로 미루어 안동의 부곡은 완전히 소멸된 것은 아니었다.

곧 『경상도읍지』의 방리조(坊里條)에 의하면 개단·소천부곡뿐만 아니라 『여지도서』의 고적조(古蹟條)에도 보이던 요촌(蓼村)·하양(河壤)·신양(新陽)·소라(召羅)·토곡(土谷) 부곡 등이 여기서도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이들 부곡은 그 구역이 극히 축소된 상태이긴 하나 면리와는 별개로 존재하고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팔도를 폐하고 전국을 23관찰부로 고치면서 안동에 관찰부를 두고 경상도 동북부 17개 군을 관할토록 하였다.

[의의와 평가]

안동대도호부의 행정 영역은 조선 전기에 골격이 갖추어진 이래 현으로 격하되는 극단적 상황을 제외하고는 조선 후기에도 큰 변화가 없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후기에 나타나는 변화도 중앙의 지방 통치의 효율화를 위한 행정 체제의 개편이라는 목적이 우선한 것이었으나, 이 지역의 생활권에 대한 고려도 일정하게 가미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그 같은 행정구역은 곧 안동부의 실질적인 행정 관할을 반영하는 것이었다.

『영가지』의 권두에 안동부의 구획을 표시한 지도는 본부(本府) 지역 외에 8개의 속현 지역과 2개의 부곡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다. 그렇기 때문에 안동부의 관내에 소속되어 안동부사의 직접 통치를 받는 행정의 실질적 관할은 본부를 포함한 속현과 부곡에 국한된다고 하겠다. 나아가 춘양·내성·재산·감천현과 개단·소천부곡이 비록 독립된 군현의 개재로 말미암아 안동부와 격리되어 월경지가 되었다 할지라도 행정 체계상 안동부에 소속되어 지휘를 받도록 되어 있었다.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23.12.15 오탈자 수정 [변천] 병산(屛山) → 병산(瓶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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