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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315
한자 才品里
영어음역 Jaepum-ri
이칭/별칭 자품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재품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정순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14.43㎢
총인구(남, 여) 224명(남자 134명, 여자 90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118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유래]

조선시대 말에 학림공(鶴林公)이란 사람이 16세 때 과거에 급제하여 정6품 벼슬에 제수된 뒤 덕망과 인품이 널리 알려지자, 재곡의 품(品)을 받은 선비가 사는 마을이라 하여 재품(才品)이라 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인재가 많이 태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재(才)’자를 ‘자(者)’자로 바꾸어 자품이 되었다고 한다.

자연마을인 백현은 북쪽에 흰 운모석이 나는 광산이 있어서 운모를 실어 나르다가 흘려서 고개가 하얗게 보인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옛날에는 구헤티라고도 하였다.

느릇은 마을을 감싸고 있는 산이 하늘거미가 줄을 친 형국이라 산 모양이 느릿(느릇)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학가산 정상으로 오르는 깎아지른 절벽이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 같다 하여 천주라고도 하였다. 월래는 풍수지리설에 따르면 운중침월(雲中沈月)이라는 길지가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마을이 점차 번성하자 창성할 ‘창(昌)’자와 풍성할 ‘풍(豊)’자를 써서 창풍(昌豊)이라고도 하였다.

일제강점기 이후 '자품'이라는 명칭으로 지속적으로 불리다가 2017년 3월 안동시의 조례 개정을 통해 옛 명칭인 '재품'을 되찾았다.

[형성 및 변천]

조선시대에 안동부 부서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1896년 부서면이 서후면으로 개칭되어 서후면에 속하게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안동군 서후면에 속하였고,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서후면 자품리가 되었다. 2017년 재품리로 개칭되었다.

[자연환경]

마을 양옆으로 산지가 있고, 풍산천이 가로질러 흐른다. 월래에는 학가산 깊은 골짜기에서 흘러내린 물줄기가 모여 이루어진 개천못이 있는데, 주위가 높은 산으로 둘러싸여서 하늘을 연다는 뜻에서 개천지라고도 하였다.

[현황]

서후면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2008년 12월 기준 면적은 14.43㎢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118세대에 224명(남자 134명, 여자 90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자연마을로 재품·느릇·월래·샛말 등이 있다. 대규모 한우 목장에서 키우는 자품 한우가 유명하다. 문화 유적으로 광흥사(廣興寺)·선암사 등이 있다. 광흥사는 신라시대에 창건되어 여러 차례 중창을 거치면서 큰 사찰이 되었다.

1946년 큰 화재로 광흥사 대웅전 6칸이 소실되었고 1954년과 1962년에는 각각 극락전과 학서루·대방이 무너져 지금은 응진전·명부전·응향각·산령각·요사채가 남아 있다. 특히 절 안에 있는 은행나무는 안동 용계리 은행나무에 견줄 만하다. 절터가 학이 날개를 펼쳐 공중으로 솟아오르려는 순간처럼 넓게 벌리고 있는 모양이어서 넓게 일어난다는 뜻으로 이름을 광흥사로 지었다고 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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