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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2400254
한자 西枝里
영어음역 Seoji-ri
이칭/별칭 서가재,서가현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김선주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법정리
면적 2.38㎢
총인구(남, 여) 225명(남자 116명, 여자 109명)[2015년 12월 31일 기준]
가구수 85세대[2015년 12월 31일 기준]

[정의]

경상북도 안동시 와룡면에 있는 법정리.

[명칭유래]

서가재 또는 서가현이라 불리다가 변하여 서가지·서지가 되었다.

[형성 및 변천]

서지리『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서가현촌으로 부르다가 후에 서지로 불렀는데 고려 때 전리판서(典理判書)를 지낸 남휘주(南暉珠, 1326~1361)가 처음으로 터를 잡아 살기 시작하였고, 그 뒤 직강(直講) 이봉춘(李逢春, 1542~1625)이 이어서 살았다”고 한다. 『와룡면지(臥龍面誌)』에는 “직장(直長) 이한(李漢, 1499~?)이 주촌(周村)에서 이곳으로 옮겨 온 뒤 자제들을 가르치고자 서간서당(西澗書堂)을 세웠다”고 하였는데 지금은 자취를 찾을 길이 없다.

조선시대에 안동군 북선면에 속하였고, 1914년에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태동과 동선면 가장동, 부내면 율세리 각 일부가 병합되어 서지동이 되고 안동군 와룡면에 편입되었다. 1995년 안동군이 안동시와 통합되면서 안동시 와룡면 서지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나지막한 구릉지에 자리 잡고 있으며 가수천(일명 역수천·간수천)이 마을을 가로질러 흐른다. 가수천와룡면 이상리에서 발원하여 남쪽으로 흘러 이하리를 거쳐 서지리 가수내마을에 이른 뒤 동쪽으로 굽이쳐 흐르다가 중가구리에서 가구천(佳邱川)과 만나 남쪽으로 꺾어 흐르다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가수천은 고려 태조와 후백제 견훤(甄萱)과의 병산 전투가 벌어졌던 역사의 무대이기도 이다. 『영가지(永嘉誌)』에 따르면, “견훤은 시랑 김악(金渥)과 군사 8,000여 명을 잃었으며, 당시 냇물이 시체로 인해 흐르지 못하여 거꾸로 흘렀다”고 한다. 이후로 사람들은 물이 거꾸로 흐른 냇물이란 뜻으로 역수천, 소금물(간수)이 흐른 냇물이라 하여 간수내(일명 가수내)라고 하였다. 또 견훤이 숨은 모래를 진모래·긴모래[長沙]라고 불렀다고 한다.

안막재(일명 안막재대박)는 안동시 안막동서지리를 이어 주는 고개로 푸른 풀이 많다 하여 옛날에는 청머리재라 하였고, 와룡·예안·도산 사람들이 소를 안동장에 팔기 위하여 풀이 많은 재에서 풀을 먹여 소의 배가 벗구처럼 불었다 하여 벗구재라고도 하였다.

[현황]

안동시에서 북쪽으로 4㎞ 지점에 있는 마을로 면 소재지에서 가장 가깝다. 2008년 12월 31일 기준 면적은 2.38㎢이며, 2015년 12월 31일 현재 총 85세대에 225명(남자 116명, 여자 109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가시내·절골·왯마·서갓 등의 자연마을로 이루어졌으며, 남쪽으로 안막동과 이웃하고 있다. 가시내는 서지리에서 가장 큰 마을로 가수천이 마을 앞을 휘감아 흘러 붙여진 이름이다. 600여 년 전에는 가수천촌(嘉水川村)이라고도 하였으며 가수내·역수천(逆水川)이라고도 한다.

절골은 가수내 동쪽에 있는 마을로 절이 있던 골짜기 마을이란 뜻으로 사동(寺洞)이라고도 한다. 서갓마을에서 남쪽으로 1㎞ 정도 떨어져 있으며, 마을 뒤에 흥해배씨 가수천 재사가 있는데 옛날 가수암(嘉水庵)이 있던 자리이다. 왯마는 절골 북쪽에 있는 마을로 꽃밭 등 고갯마루에 있는 휴게소 오른쪽으로 난 길을 따라 내려가면 있다. 옛날 기와를 굽는 기와굴이 있어서 와야(瓦野)라고 하던 것이 왠마·왼마·왯마 등으로 변하였다.

서지리에 전해 오는 이야기에 따르면, 원래 이 마을은 삼판서의 출생지이며, 아주 부촌이었는데 하루는 승려가 탁발하러 오자 한 마을 사람이 시주를 많이 할 테니 손님이 적게 오게 해 달라고 하였다. 이에 승려는 숲을 가꾸고 동구 뒤 암석을 뜯어내면 손님이 적게 올 것이라 하였다. 이에 마을 사람이 승려의 말대로 숲을 가꾸고 암석을 뜯어내자 학 세 마리가 날아갔고 마을은 곧 폐쇄되었다고 한다. 유적으로는 가수내 뒤 무은산(茂隱山) 기슭에 학봉 김성일(金誠一, 1538~1593)의 묘가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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