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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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李瀣
영어음역 Yi Hae
이칭/별칭 경명(景明),온계(溫溪),정민공(貞愍公)
분야 역사/전통 시대,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문무 관인
지역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시대 조선/조선 전기
집필자 배종석
[정의]
조선 전기 안동 출신의 문신.

[가계]
본관은 진성(眞城). 자는 경명(景明), 호는 온계(溫溪). 할아버지는 진사 이계양(李繼陽), 아버지는 진사 이식(李埴), 어머니는 춘천박씨(春川朴氏)이다. 동생이 퇴계(退溪) 이황(李滉)이다.

[활동사항]
이해는 경상도 안동부 예안현 온계리(溫溪里, 현 경상북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에서 태어났다. 7세 때 아버지가 돌아간 후 어머니가 과부의 자식이란 말을 듣지 않게 몸가짐을 삼가고 행실을 가다듬으라고 훈계했다. 8세 때 숙부 이우(李堣)에게 가서 수학하였다. 1528년(중종 23)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이듬해 승문원부정자를 거쳐 예문관검열, 사간원정언, 성균관전적, 사간원사간, 사헌부대사헌 등을 역임하였다.

1545년(인조 1) 헌납 이치(李致) 등과 함께 우상 이기(李芑)를 논박하여 체직시켰으며 이듬해 황해도관찰사와 충청도관찰사를 지냈다. 1549년(명종 4) 동지중추부사가 되고 이듬해 한성부우윤이 되었는데 명종이 즉위한 때부터 꾸준히 소윤(少尹)이 득세한 까닭에 결국 이기의 심복인 이무강(李無彊)의 탄핵을 받았다. 갑산(甲山)에 유배가는 도중 양주(楊州)에서 향년 55세로 병사하였다.

이해는 성품이 너그럽고 후중하였으며 효우에 독실하였고, 글씨에 뛰어났다. 조카를 가르침에 자신의 아들처럼 여겼다. 조정에 나아가서 처신함에 있어서는 한 절개를 지키려 힘썼으며, 시류를 따라 세력에 아부하려 하지 아니하였다. 일찍이 김안로(金安老)와 이웃하고 살았으며, 더구나 인척 관계에 있었지만 그의 천거를 끝내 거절하였다.

[저술 및 작품]
문집으로 『온계집(溫溪集)』이 있다. 문집 중 시 「우열상상견경호(偶閱牀上見景浩)」에서 이기(理氣)를 논하면서 부귀나 빈천 따위에는 마음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또 「위군난부(爲君難賦)」는 『논어(論語)』「자로편(子路篇)」의 한 구절을 인용하여 자신의 정치사상을 피력하여 관인의 면모를 잘 보여주고 있다. 기타 시는 정루(亭樓)를 대상으로 한 것이 대부분이다. 문집은 1772년(영조 48) 이해의 7세손 이세택(李世澤), 이급(李級) 등이 이상정(李象靖)의 서문을 받아 도산서원(陶山書院)에서 간행하였다.

[묘소]
묘소는 안동부 예안현 연곡리(燕谷里, 현 안동시 도산면 온혜리 연곡)에 있다.

[상훈과 추모]
1569년(선조 2) 이황이 묘지명과 묘갈명을 지었다. 1654년(효종 5) 영천(榮川)에 삼봉서원(三峯書院)이 세워져 배향되고 1667년 온계(溫溪)에 청계서원(淸溪書院)이 세워져 배향되었다. 1691년(숙종 17) 이조판서에 추증되었다. 1784년(정조 8) 정민(貞愍)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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